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1988년 서울올림픽

1988년 9월 21일.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김영남 선수 중계 때문이다. 이 소식에 과일을 깎다 말고 어머니는 소파 뒤로 뛰어나가 함께 관람 중이던 아버지와 형을 얼싸안으셨다. 북받치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어머니, 과도는 놓고 뛰시지요. 올림픽은, 아니,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충분히 민족적으로 자극적이었다. 그 자극은 `애국심`으로 채워진 방송 해설로 증폭했다. 해설은 일관됐다. "국가를 위해 더 버텨라, 금메달이 눈앞에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년 후 베이징. 세계 수영계 주변국이던 우리나라의 박태환 선수가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최초다. 기록은 3분41초86. 달리기도 힘든데, 그 시간 동안 물에서 부력을 이기며 팔과 다리를 전력으로 젓는 건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훈련했을까? 메달 색깔과 별개로 시청자는 이런 궁금증을 가진다. 해설위원은 이런 걸 해설해주라고 있는 거다. 하지만 당시 중계는 해설보단 고함으로 채워졌다. (출발 전) "예, 박태환 선수, 잘 할 수 있어요.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출발) "아! 박태환! 아! 박태환!(×100)" (금메달 확정) "아~~~! 박태환!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4분 동안 `해설`이 아닌 감정만 `배설`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네 개의 금메달을 딴 한국 양궁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들의 경쟁력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시스템의 핵심은 `운이 실력을 넘어서게 하지 마라`다. 1년 동안 경쟁으로 가장 우수한 선수를 뽑는다. 지연, 학연, 혈연의 개입은 없다. 시스템 뒤엔 현대자동차의 후원이 있다. `지원해 줄 테니 곁눈질 말고 최고를 뽑아라!` 그래서일까. 한국 양궁은 매번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전 세계에 지도자도 많이 진출시켰다. 이번 대회 양궁 참가국 중 7개국 감독이 한국인이다. 지도자의 세계화다. 한국 양궁은 이러한 `이야깃거리`를 가진다. 해설위원은 다양한 `해설`로 종목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응원`만 난무했다. `잘 할 수 있다`, `침착하게 쏘면 된다`, `10점이 필요하다.`

#올림픽 해설의 품격

대다수 해설자는 선수나 지도자를 경험했다. 현장의 선수나 긴박한 상황을 이해한다. 후배이자 제자이기도 할 선수들이 과도한 부담감을 안고 뛰는 것도 눈에 보인다. 위로하고 달래주려는 마음도 충분히 인간적이다. `해설`보다 `응원`을 하는 이유겠다. 하지만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할 사람은 국민이다. 해설자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경기 상황을 해설해야 한다. 묘사하고(지금 상황이 어떻다), 설명하며(이렇게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는 이렇다), 해석해야 한다(이것의 의미는 무엇이다). 해설위원은 냉정해야 한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해설의 본보기를 육상 여자 100m 허들 경기가 보여줬다. 육상을 잘 모르고 별 관심도 없던 내가 흥미롭게 경기에 몰입할 정도였다. `응원`이 아닌 `분석`과 `사례`가 있었다. 예선 세 경기 동안 주목해야 할 선수 기록, 기록 변천사, (허들)경기 규칙, 자주 나오는 실수, 우리나라 육상 현황, 육상이 강한 나라의 특성 등등. 무조건적인 자국 선수 띄워주기나 다른 나라 선수 폄하는 없었다. 오롯이 시청자가 육상에 주목하게 했다. 해설의 품격이란 이런 거다. 경기단체는 이제 선수 훈련하듯 해설위원도 훈련해야 한다. 잘 키운 해설위원이 종목을 향한 관심사를 바꿀 수 있다.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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