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경남 창녕군 영산면 죽사리 933번지, 한적한 왕복 2차로 도로변 비탈에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쳐진 작은 사당이 있다. 삐걱대는 솟을대문 너머 들여다본 내부엔 칙칙하고 울퉁불퉁한 돌바닥 뿐, 아무 것도 눈에 띠지를 않는다. 사당 옆에 머쓱하니 서 있는 갈색 표지판, `문호장 발자국`이란 굵은 글씨만이 이 사당의 정체를 알릴 뿐이다. "발자국이라고?" 다시 고갤 돌려 돌바닥을 살펴보니, 그제야 번갈아 찍힌 영락없는 `사람 발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수백 년간 전해지는 설화에서, `문호장(文戶長)`은 백성의 원망과 한을 풀어주는 도인이자 영웅이었고, 매년 영산에선 단옷날 그를 기리는 제사를 36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타던 말이 넘어져 바위에 자국이 남고, 휘두른 칼에 바위도 베어져 칼자국이 났다 하니, 이 도인의 `묵직한 발걸음`이 바위에 발자국을 남기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잠깐만! 그 단단한 바위가 짓눌려 발자국이 찍혔다니, 대체 몸이 얼마나 무거웠다는 걸까? 화강암의 경우 평균 압축강도는 약 125 Mpa(메가파스칼), 그러니까 1㎠ 면적에 약 1.25톤의 무게가 집중되는 압력이 가해져야 비로소 화강암의 형태가 무너져 파괴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때론 최대 3톤이 넘기도 한다. 발자국이 찍힌 곳은 사암과 이암으로 이루어진 퇴적암으로, 1㎠ 당 약 1.5-2톤 무게의 압력이 가해져야 파괴된다. 발바닥 면적(약 250㎠)으로 환산하면 무려 375-500톤! 문호장이 아무리 풍채가 좋다 한들 어찌 가당키나 할 일인가! 그런데 의외로 해답은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 바다 같이 넓은 내륙호 수면에 뜨거운 햇빛이 부서진다. 수평선 멀리서부터 끝없이 밀려드는 흰 파도. 완만하게 펼쳐진 호숫가 펄 위엔 파도 무늬가 얕게 물결친다. 우기(雨期) 동안 높아진 수위에 잠겼던 이곳은, 물이 빠지면서 이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진흙과 모래가 번갈아 쌓여 적당히 단단한 펄 표면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거나 조개가 구멍 판 흔적이 어지럽다. 먹이를 쪼는 새들이 부산하게 종종걸음 치는 모습은 여느 물가 풍경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런데, 폭풍이라도 다가오는 것일까? `쿠쿵! 쿠쿵!` 하늘인지 땅인지 모를 커다란 울림소리에 고갤 돌려보니,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덩치의 실루엣! 어느 산사의 대웅전 기둥 같은 다리가 코끼리의 몇 배나 되는 몸통을 떠받들며 내 곁을 스쳐 펄 바닥을 묵직하게 딛고 지나간다. 여차하다 차이기라도 하면 뼈라도 추릴 수 있을까. 얼른 몸을 비켜 멀어져 가는 덩치의 뒷 모습을 보니, 긴 회초리 같은 꼬리에 이어진 큰 몸통 너머로 뱀처럼 너울거리는 목이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무리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따가운 햇볕에 말라 굳어간다.

2014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의 지질 다양성-동부 경남편]에 바로 이 `문호장 발자국`이 등장한다. 360여 년 동안 섬겨오던 전설의 인물 발자국이 사실은 거대 용각류 공룡들이 남긴 발자국 화석이었다니! 중생대 백악기,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드넓은 지역은 거대한 내륙호였으며, 호숫가의 부드러운 펄을 거닐던 공룡의 발자국이 밀려든 퇴적물에 묻혀 단단한 암석으로 굳어진 것. 어쩌면, `사실`은 우리의 아름다운 상상보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단순하다. 문호장처럼 초월적인 존재도, 초자연적인 힘도 필요치 않다. 그저 이 땅에 살았던 누군가, 무엇인가의 존재, 그리고 수많은 우연의 중복과 오랜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 자취를 남길 조건은 충분하다.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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