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
>

[대덕포럼] 능동과 피동의 조화

2021-07-27 기사
편집 2021-07-27 07:27:17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국어사전은 '능동'을 '다른 것에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피동(수동)을 '남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능동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피동 혹은 수동은 소신과 주관이 없고 남에게 이끌리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능동적인 태도를 가져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교육받곤 했다.

능동과 피동의 개념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능동형 기기는 작동하기 위해 기계적 또는 전기적 외부 구동력이 필요한 기기를 일컬으며, 피동형 기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구동력이 없어도 중력, 모세관력, 온도차, 압력차, 자력, 탄성력 등 자연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기기를 칭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기는 전기를 구동력으로 사용하는 능동형 기기다. 인류는 자연의 힘에 의존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더 효율적인 능동형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와트에 의해 발명된 증기기관은 중력의 낙차를 이용하는 물레방아를 밀어내며 1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인류는 전기를 구동력으로 이용하며 에너지가 더욱 집약된 능동형 기기를 사용 중이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이 삶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기기들이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 우리와 소통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더욱 능동적이고 스마트한 기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축약된다.

그렇다면 피동형 기기는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될까? 피동형 기기는 자연법칙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에 작업의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조용하고 신뢰도가 높다는 장점을 지닌다. 노트북컴퓨터의 뒤판을 열면 냉각팬과 CPU를 연결하는 얇은 띠를 볼 수 있는데, 이 히트파이프가 피동형 기기이다. CPU에서 발생한 열을 흡수한 유체가 모세관력 또는 중력에 의해 차가운 냉각팬으로 이동함으로써 열을 방출하는 원리다. 발열을 관리하는 기술은 CPU 못지않게 컴퓨터 성능에 큰 영향을 준다. 최근 A사에서 출시한 노트북 컴퓨터는 냉각팬을 제거하고 히트파이프만으로 발열을 제어해 소음이 없다는 것을 자랑하며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피동형 기기의 조용함이 능동형 기기의 효율성 보다 주목받은 사례다.

피동형 기기는 어떤 경우에도 작동하기 때문에 효율성보다 안전성이 더 중요한 원자력 설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우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쓰나미로 모든 전원을 상실했을 때 능동형 기기가 얼마나 무력한지 생생하게 경험한 바 있다. 제3세대 원자력발전소까지는 능동안전계통에 의해 원전의 안전을 확보했으나, 제3세대 이후 원자력발전소는 피동안전계통을 적극적으로 채택해 안전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효율성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오작동, 작동불능의 확률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설계가 더 안전하다는 철학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원자력발전소 피동안전계통을 외부전력의 필요 여부, 기계적 작동부 및 작동유체 존재 여부에 따라 4개의 등급으로 분류해 신뢰도를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원자력 선진국들은 다양한 소형원자로(SMR)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소형원자로는 크기가 작고 출력밀도가 낮아 대형원자로에 비해 피동안전설비를 적용하는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이를 적극 도입중이다. 효율성과 안전성을 맞바꿨다고도 볼 수 있겠다. 개발과 효율을 강조하던 시대에서 안전과 지속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이런 맞교환은 우리 삶 다양한 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과학기술의 진보는 능동과 피동의 오묘한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