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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방명록 글쓰기

2021-07-27 기사
편집 2021-07-27 07: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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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임전배 천안예술의전당 관장

방명록에 글을 써보면 기대만큼 흡족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상 속 혼례식장·전시회장·출판기념회에서 이름이나 축원 몇 자 적는 상황은 별 부담이 없다. 하지만 국가행사·국제행사·현충원참배 등 대외적 공식자리는 매우 각별하다. 더욱이 국민의례까지 엄수되는 공간은 한결 조심스러워진다. 단순한 메모나 일기(日記)가 아닌 타인 앞에서 글쓰기란 예상보다 녹록치 않다.

그만큼 언어학습은 어렵고도 중요하다. 국어교육과정 중 듣기·말하기·읽기·쓰기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다. 어느 분야가 일부 부족할 경우 대략 의사소통은 되겠지만 온전한 어문을 구사하기는 충분치 않다. 잘 듣지 못하고 제대로 말할 수 있으며 정확히 읽지 못하면서 탁월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개인의 사고(思考)를 글로 표현하는 어휘력과 문장력은 보편적으로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학습량과 비례한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작가 중엔 간혹 육필(肉筆)원고를 남기기도 한다. 인고의 산물이 작품으로 탄생한다. TV사극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10년간 집필한 고 신봉승 작가가 평생 초록잉크로 쓰고 비워낸 잉크병만 200개나 된다. 작가들이 밤새 생각과 씨름하며 퇴고(推敲)를 반복한 원고는 정신없이 어수선하다. 초고(草稿)여백에 추가된 들여쓰기·내어쓰기·연결하기·사이띄우기·줄바꾸기·삭제하기 등 교정부호는 일반인에게 여전히 생경한 존재다.

비록 작가는 아니더라도 붓글씨·펜글씨·만년필글씨를 경험한 세대의 글씨솜씨는 감각적으로 아름답다. 젊은 날 한동안 품었던 나의 영웅과 파카는 소실됐지만 애장품 몽블랑만년필 두 자루는 20년째 여전히 사용 중이다. 지면을 스칠 때 사각거리는 만년필촉의 마찰음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취향차이겠지만 필기도구로써 볼펜은 실용성과 속도감이 우수하나 만년필과는 품격이 다르다. 기계식펜슬은 편리함이 뛰어나지만 나무연필의 유연한 궤적만 못하다. 육각목재와 심을 깎을 때 들리는 행복한 소리와도 거리가 있다.

어떤 필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짓기에 더하여 쓰기까지 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것 같다. 예로부터 글씨쓰기를 중국에선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우리나라는 서예(書藝)라 했다. 글씨가 규칙이나 깨달음을 넘어 예술의 경지임을 넉넉히 헤아렸던 연유다. 요즘 각종면접에서 신언(身言)은 현장 확인이 가능하지만 서판(書判)에 대한 평가는 달리 방법이 없다. 불편이 따르겠으나 적어도 필체나 필력확인을 위해 응시자에게 짧은 글을 손수 쓰도록 해보는 것은 어떨까싶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쓴 글씨에는 감성의 온도와 생각의 밀도가 배어있다. 글씨와 문장은 작성자의 경륜과 인품을 대변한다. 글이 하룻밤 사이 완성되기 어렵고 글씨가 하루아침에 무르익지 않음이 어쩌면 공평해 보인다. 어느 분야든 큰 성공을 위해서는 일만(一萬)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매진하면 자신만의 서체가 정립되리라 믿는다. 소박한 필체라도 그 사람이 지닌 품성과 진심이 묻어나는 고귀함은 대체불가하기에 진정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름처럼 꽃답고 향기 번져야 할 '방명록(芳名錄)'에 개발새발 흔적을 남기기는 어쭙잖다. 자신의 깜냥이 부족하다 느껴지면 기본의례만 갖추고 다소곳 물러서는 것이 낫겠다. 다중이 참석하는 공간에서 권위나 체면으로 인해 무심코 붓이나 펜을 잡는 것은 무모하다. 그러나 평소에 참 글과 멋진 글씨쓰기로 필력과 필체를 꾸준히 다듬어 놓는다면 숨은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언젠가 오게 된다. 임전배 천안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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