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석 한밭대 국제교류원장
권기석 한밭대 국제교류원장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하여 일어난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은 지금 일어나는 세상의 사건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다른 사건들이 원인이 돼 결과한다고 한다. 이는 복잡계 과학의 물질세계에 대한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 동안 논의돼 온 지역대학의 고차방정식과 같은 문제 또한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다. 가장 최근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인구감소와 지역대학의 신입생 충원문제다. 하지만 심층에는 수도권 중심의 사회경제적 구조, 더 깊이는 문화심리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최근 논의되는 것처럼 지역대학에 대한 입학정원 조정이나 대폭적 재정지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사회와 교육소비자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대학의 세 가지 역할, 즉 교육, 연구, 산학협력에 있어 지역대학의 혁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대학교육의 질 제고가 중요하다. 초·중등 교육은 상대적으로 표준화된 교육내용에 대한 개발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반면, 대학교육은 대학교수의 학문의 자유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대학교육 소비자의 수요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대학의 교육 콘텐츠에 대한 개발이나 평가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대학의 교육 콘텐츠에 대한 대체제가 이러한 문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온라인에서 수준 높은 경제학 강의, 코딩 강의를 무료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대학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에 지역의 교육중심대학은 대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서비스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지역대학에서는 상담을 통한 코칭과 실습을 통한 교육 등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교수의 강의 질 평가와 콘텐츠에 대한 개발이 시급한 영역으로 다뤄져야 한다.

다음으로 연구 활동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에 충분하고 수준 높은 지식과 노하우가 공급되고 공유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변화에 지역기업과 지역경제가 적응하고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탁월한 수준의 연구 집단이 필요하다. 최근 논의되는 광역권 국립대학 네트워크나 구조조정 등의 방법을 통해 충분한 규모의 대학 학과를 구성하고, 이러한 학과들에 자유롭게 기획해 쓸 수 있는 묶음예산(block funding)이 지원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가 지역거점 연구집단에 모여들면, 이들이 지속적으로 지역에 정주하면서 기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반세기 전에 정부출연연구소를 설립해 지원했던 것처럼, 이제 대학을 창의적 연구의 보루로 삼아야 한다.

지역대학의 위기는 지역경제, 지역사회의 붕괴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 연쇄반응의 저지선으로 지역사회에 밀착된 산학협력이 추진돼야 한다. 지역에서 교육받고, 지역의 좋은 일자리에 취업해, 명성 있는 기업을 일구는 선순환의 지역정주형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의 코로나 시대는 역설적으로 온라인 강의가 효과적일 수 있으며, 대학의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지역의 대학과, 지자체, 기업, 연구소가 서로의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방안으로 지역의 캠퍼스에 기업이 상주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을 대학에 끌어들여 청년들이 이러한 기업과 소통하면서 역량을 길러가는 공간이 구축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해결해야 할 법적 규제나 정책적 유인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를 추진할 기구로 지자체, 지역대학, 연구소 등이 함께 참여하는 권한이 부여된 정책협의체 구축이 시급하다.

권기석 한밭대 국제교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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