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제레미 벤덤은 늘어나는 죄수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그리스어로 모두 본다는 뜻을 가진 판옵티콘 감옥을 고안한다. 판옵티콘은 대형 원형 감옥으로, 수용실이 건물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원형 건물 중앙에 감시자가 머무르는 중앙탑이 있는 구조를 말한다. 판옵티콘 시설은 죄수방은 빛을 이용해 항상 밝게 유지해서 수많은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한꺼번에 감시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감시자가 있는 중앙 탑은 어둡게 유지해서 죄수가 보지 못하게 설계했다. 이런 비대칭성의 일방적인 판옵티콘 구조로 인해 수감자는 항상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따라서, 감시자가 없어도 죄수는 자기통제의 내면화가 유도되어 규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못하게 된다고 벤덤은 설명했다. 하지만 판옵티콘식 감시는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대중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CCTV는 벤덤이 고안한 판옵티콘 감시망의 21세기 버전의 결정판일지도 모른다. 이 값싼 자동기계는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의 선명한 화질로 사람의 시선을 대신해서 도처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사실 현대인은 안전과 편리하다는 긍정적인 효과에만 도취되어 CCTV가 감시도구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CCTV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감시체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 사회는 감시는 곧 안전이라는 혜택이 동반한다고 믿으며 과도한 사생활 노출, 프라이버시 침해, 인권 침해 등 부작용 따위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여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안에 대해 국민여론은 80%가 찬성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들은 CCTV 설치 의무화시 의료진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 최선의 진료를 방해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환자와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을 우려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잠재적으로 모든 수술하는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며 감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좋아할 의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당신이 하루 종일 일하는 일터를 CCTV가 사방에서 감시하고 있다면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애초에 이런 강제적인 입법으로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란을 야기한 일차적 책임은 분명 잘못을 저질러온 일부 의사들과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의사협회에 있다.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의 대리수술과 성범죄를 일삼는 의사들을 제대로 법적인 조치를 하고 자정 노력을 했더라면 다수의 책임감 있는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일터를 감시하는 말도 안 되는 흉물스러운 CCTV 설치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무 설치 법만이 능사는 아니다. 의료법의 개정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법이기 때문에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재 논의중인 수술실 CCTV 설치 법안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촬영의무 요건, 촬영 대상, 녹음여부, 보안 조치 등 논란이 되는 조항이 많다. 의무 설치보다는 의료기관의 자율성에 맡겨도 될 일이다. 의료 서비스도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몇몇 척추 전문 병원과 성형외과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수술실내 CCTV 설치를 하고 이를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도 외과 수술을 요하는 전공의를 선별하는 진료과는 인력부족으로 인해 의료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많다. 이런 법안이 수술이 주된 과(예 흉부외과 등) 전공을 선택하는데 있어 향후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도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의료사안에 대한 이해 없이 당장 여론에 힘입어 졸속으로 만들어질 법안이 불러오는 부작용은 없는지 여러모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CCTV가 많은 사회가 과연 안전한 사회, 좋은 사회인지 반문해 볼 필요도 있다.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