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공학박사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공학박사
눈 덮인 광야를 걸어갈 때 / 함부로 걷지 마라 / 오늘 나의 발자국이 / 뒷 사람의 이정표 되리니.

서산대사의 이 한시 `눈길 함부로 걷지 마라`는 첫 사람이 바른 길을 걸어야 뒷 사람의 좋은 본을 본다는 지침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은 이를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김구 선생은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 하시면서 큰 방향을 제시했고, 우리들은 그 길을 잘 따라가서 오늘날의 문화강국이 됐다.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첫 사람과 뒷 사람을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한 대한민국은 이정표를 따라가는 뒷 사람이었다. 앞 사람이 걸어간 길을 쭉 뒤따라 갔으며, 그 결과 세계 경제 10위권의 강국이 됐다. 추적자로 첫 사람을 따라서 쭉 갔다면, 이제는 눈 덮인 광야를 처음으로 가야 하는 개척자의 입장에 서 있다. 우리나라가 추적자의 입장에서 따라가는 전략에는 정답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길로만 따라가면 됐고, 그 길을 빠르게 뛰어갈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면 됐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는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눈 덮인 광야를 가야 하는 첫 사람의 막막함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자가 투자한 회사 10개 중에 하나만 성공한다. 나머지는 돈을 날리는 상황을 맞이한다. 10개 중에 9개가 망하는, 달리 말하면 실패율이 무려 90%인 이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성공한 하나가 10배 이상의 수익을 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열 갈래 길로 나누어 보내보고, 그 중 한 길만 찾는다면 성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혁신을 기본으로 장착한 자본주의 생태계다.

대한민국 연구개발 부분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광야를 10명이 출발해서 그 중 9명은 실패하고, 단 한 명이 엄청난 성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광야로 출발한 10명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참조할 만한 표준을 남길 수 있다. 10명 중 1명만 성공적인 참조표준(실제 참조표준은 국가공인과학데이터로 다른 의미이다)을 알려줄 것이며,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눈 덮인 광야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9명의 실패자를 용인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 때, 우리는 눈 덮인 광야 앞에서도 막막해하지 않으며, 과감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뒷 사람이 아니다. 세계 첫 사람으로서 실패가 가능한 길을 가야 한다.

실패가 가능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공무원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과제 성공률이 100%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국민들과 우리 정부는 과학계를 신뢰해서 열에 아홉은 실패하는 길을 걷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그 신뢰가 필요하다. 과제 성공률이 100%가 아닌, 10%이어도 괜찮다는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넘어 과학기술강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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