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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광장] 장기 이식, 새로운 삶을 향해 달리는 희망버스

2021-07-20 기사
편집 2021-07-20 0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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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나용길 세종충남대병원장
우리 조상들은 나뭇가지 끝에 남아있는 가장 좋은 과일은 따지 않고 씨과실로 다시 땅에 심었다고 한다. 땅에 심어서 새싹을 틔우고 나무로, 숲으로 가꾸면서 더 많은, 더 좋은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원하며 희망을 심었다고 한다.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소장, 혈관, 피부 등 신체의 많은 장기나 조직들은 이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같이하는 동반자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 500여 명에 달하는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 이뤄지고 있다. 한 명의 뇌사자는 평균 3개의 장기를 기증하고 숭고한 삶을 마무리하며 1500-1600명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있다. 이처럼 장기 이식은 새로운 삶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희망버스이고, 장기 기증자에게는 현재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삶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은 이식의 40~50%, 유럽은 90% 정도가 뇌사자의 기증에 의해서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생체이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가족 구성원의 감소,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생체이식 역시 쉽지 않아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장기 기증 희망자는 전 인구의 4% 정도에 불과해 뇌사자 이식 대기 상태가 오히려 장기 이식 대기 환자들에게 희망 고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은 지금은 생명과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 얼마만큼 값진 일인지는 분명하다. 그렇기에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는 병원과 협력 아래 장기 이식을 활성화하기 위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식은 큰 수술, 어렵고 힘든 수술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 장기 기증에서 이식까지의 진행 과정은 어려움이 많다.

장기이식학회 등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하루 5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장기 기증이 활성화된다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기조직 기증 서약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최근 들어 장기 기증 희망 등록 기준 나이가 낮아지면서 청소년층에서 주목할만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만16-18세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 수는 지난 2018년 231명, 2019년 1618명, 2020년 338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9년 7월 16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만16세 이상부터 부모 동의 없이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만19세 미만이 장기 기증 등록 희망자로 등록하려면 법정대리인 서명과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증빙서류가 필요했다.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이란 뇌사상태이거나 심장마비 등으로 숨지면 자신의 장기나 신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절차로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은 없다.

병원에서는 이러한 인식 변화를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춰 홍보 영상 채널을 만들어 일반인들이 쉽게 장기 기증에 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기 이식 또는 기증 절차가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는 인식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다면, 사후 장기조직 기증 등록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불의의 사고 후 가족들이 장기 기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얻는 미안함을 덜어주고 뇌사자의 장기조직 기증률도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장기조직 기증을 한 뇌사자를 기억할 수 있는 채널이나 공간 등을 마련한다면 기증자의 고귀한 희생이 오래 기억돼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통해 사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이러한 기증 서약이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그리고 값지게 만들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파급되길 염원해본다. 나용길 세종충남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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