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의 소녀상` 일본 전시는 2019년 8월 나고야에서 처음 시도됐다. 그 전시가 우익단체의 항의 시위로 3일만에 취소됐고 소송 끝에 10월에 다시 전시하게 됐다. 같은 전시가 지난달 말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결국 우익 단체의 격렬한 항의 시위로 취소됐다. 지난 6일 나고야 전시가 열렸는데, 위험물 배달 사건으로 이마저도 이틀 만에 중지됐고 오사카 전시는 소송 끝에 16일부터 열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러 매체에서 우익 단체나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을 비판하는 기사나 사설을 싣고 있다. 필자 역시 이런 파행을 보며 안타까움이 크다. 또한 일본의 우익단체들의 행위,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태도에 대한 분노도 크다. 그러나 그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기획하고 소송도 불사하며 어떻게든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우익단체의 항의 시위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공포 분위기다. 일단 이들의 표적이 되면 그 단체는 물론 주변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해당 단체는 좀처럼 버티기 힘들다. 가까스로 버틴다 해도 정부나 지자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행정력을 동원해 행사를 중지시킨다. 거의 정해진 패턴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기획한 분들은 이런 상황을 예측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충분히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것이다. 우익단체는 물론이고 정부나 지자체, 이웃들로부터 매국노, 배신자, 빨갱이라는 공격과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왜냐면 "조선의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본과 일본인을 위해서"(다카하시 마코토)다.

다카하시 마코토 선생은 1986년에 `아이치 현 내 조선인 강제연행 역사 조사반`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전쟁 당시 나고야 일대로 끌려와 노동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07년 7월부터 코로나19 전까지 500회 가까이 매주 금요일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이라는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또 나가사키의 오카 마사하루 목사는 일본에서 최초로 조선인 피폭자 문제를 제기한 분으로, 1980년부터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문제 및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하고 일본의 책임규명과 배상을 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후에 `오카 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건립돼 현재까지 조선인 피폭자 조사와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이분들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들이 `피폭자건강수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길이 열렸을 뿐이지 속 시원한 해결이 아님에도 이 길을 열기 위해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일본 사회에서 온갖 공격과 싸늘한 시선에 맞서서 싸우는 이분들이 겪는 어려움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일본 구석구석에서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피해 실태가 조금이라도 파악되고 배상 요구도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도 무겁게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 정부의 노력이 아니고 일본의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고 거기에 진보적 지식인, 변호사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그나마 묻히지 않고 더딘 걸음이나마 내딛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섣불리 낙관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이런 분들의 노력에 한국 쪽에서도 더 많은 힘을 보태며 연대하고, 조금씩이라도 확장해 간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한일관계를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져본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아서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이다.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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