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책임공방, 또 한번 실망
백신 수급상황 국민에 공개해야
인터넷 강국 민낯 드러낸 로드맵

장중식 취재 1부장
장중식 취재 1부장
코로나19 백신예약 마비사태와 관련, 대한민국 집권당 대표와 방역수장이 연일 고개를 숙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55세부터 59세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전 예약 중단 사태에 대해 "불편을 겪은 국민께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아울러 `이달 말까지 1000만 회 분의 백신이 도입되는 등 3분기에만 8000만 회 분의 백신이 들어올 예정`이라며 `9월까지 국민 70% 1차 접종 목표 달성에는 충분한 물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에 대해 언론과 야당은에 대해 "정부를 물어뜯고 신뢰를 깨기보다는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사과를, 다른 한편으로는 작금의 상황을 비판한 야당과 언론에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같은 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7월 마지막 주 도입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약 후 접종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사전예약이 가능한 물량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해 거듭 고개를 숙였다. 사실상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빚어진 오류이자 실수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이번과 같은 `접종대란`이 일어난 근본 원인을 명확히 해명하지 못하는 정부, 그리고 앞으로의 백신 조달 사항에 대해서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의 최전방에 선 정 청장까지 "백신 회사와도 비밀 준수 협정이 있어 속 시원하게 공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말로 입을 닫았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한 9월 말까지 국민 70% 접종계획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1억 명 분의 백신을 확보해 놓았다는 말로 3/4분기 70% 접종에 자신감을 표했던 그들이다.

직설적 표현을 하자면 이렇다. 확보는 했지만 국내에 들어온 물량은 적다. 계약은 계약일 뿐, 언제 어디서 어떤 백신이 얼마나만큼 들어올 지는 여전히 비밀이라는 얘기다. 국내 접종 일정은 수입 물량에 차질이 생기면 언제든 연기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것이 국민들의 안전보다 더 큰 비밀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권 여당 대표까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가며 분기별 `백신접종 로드맵`을 밝힐 정도라면 이미 그들은 백신 수급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태가 이 정도까지 치달았음에도 정치권에서는 `기모란 책임론`을 놓고 설전을 이어갔다. 여야 공방 속에 청와대 고위인사까지 진화에 나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4일 코로나 재확산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는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힉관이 질병관리청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가장 우선시하는 원칙을 한 번도 바꿔본 적 없다"고 반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수석은 "모든 것이 청와대가 위에 있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시스템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대해 `가교역할`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답답함을 넘어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누구의 책임을 따질 시간보다 더 시급한 것은 대책 마련이라는 의견부터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데 높낮이가 따로 있느냐는 격한 목소리까지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방역당국이 14일 오후 8시부터 일시적으로 중단한 만 55-59세 연령층에 대한 백신 사전예약을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지만 불안감은 아직도 여전하다.

지난해 `마스크 대란`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한 `접종 대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먼저 국민에게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 한다. 비밀유지의 원칙도 좋지만 최소한 계약된 물량과 공급일정만큼은 구분해서라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백신접종 매뉴얼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출생연도별, 홀·짝수제를 택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접종 대상자들에게 사전 예고 등 안내문자라도 발송했어야 한다.

세계 최강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운 현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집권 여당 대표 말대로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면 그들부터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중식 취재 1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장중식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