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진 충북대학교 수목진단센터장
차병진 충북대학교 수목진단센터장
어쩌면 삭막할 수도 있는 도시를 그나마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가로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가로수만큼 가여운 생물도 없다.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그 자리에 사는 가로수들은 거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힘들고 위험한 환경을 묵묵히 참아낼 수밖에 없다.

한여름에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열기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며, 숨이 턱턱 막히는 자동차 배기가스 속에서도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주변은 온통 아스콘이나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비 오는 날에도 물 한 모금 마시기 쉽지 않으며, 땅속으로도 온통 장애물 천지이니 돌덩이 같이 마르고 단단한 흙에서나마 뿌리 한 뼘 맘 편히 뻗을 공간도 없다. 일부에선 운전자 시야를 가리고, 전깃줄에 닿아 위험하다고 봄이면 가지를 강하게 잘라내어 볼품없이 만드는 사례도 가끔 있다. 그런 불상사를 막고자 산림청은 `가로수 조성·관리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고, 지자체도 조례를 통해 효율적 관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가로수는 길가에 서서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봄이면 어김없이 모든 영혼을 끌어모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여름이면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식혀준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 제법 커다란 나무로 줄지어 서 있는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우린 모른다. 가로수의 몸속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가로수는 삶을 마음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나무들이다. 도시환경은 가로수가 자라기에 매우 열악하므로 겉으로는 말짱해 보여도 속은 썩어가고 있는 가로수가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 같은 존재들이다. 건장해 보이는 가로수라 하여도 줄기나 커다란 가지 속이 심하게 비었거나 뿌리를 뻗을 공간이 없어서 뿌리가 뭉친 채 썩어있다면, 그리 세지 않은 비바람에도 맥없이 부러지거나 넘어져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찻길로 넘어져 주차해 놓은 차를 우그러뜨리고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것은 그래도 낫다. 길 가던 보행자나 이륜차를 덮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심하면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우려가 있는 가로수들은 미리 제거하거나 안전장치를 하여야 한다. 애꿎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허망하게 잃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가로수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욕먹는 일이 없도록 전문가들이 미리미리 잘 살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부터 산림청 주도하에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수목보호전문가인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자`를 양성하여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나무를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또한, 근래에는 나무에 피해를 거의 주지 않고 커다란 줄기의 내부 건전도를 알아볼 수 있는 진단장비들도 보급되고 있다.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최신 장비를 사용하여 진단한다면 잠재적 위험가로수들을 가려내어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국가와 지자체에서는 이제는 거목이 된 가로수들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다행히 올해 산림청에서는 `비파괴기법을 활용한 대형가로수 위험도 평가 및 진단` 기술 보고서를 제작하여 지자체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 일은 나무건강관리 전문가인 `나무의사`들에게 맡겨야 한다. 가로수. 그저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가로수도 보살피고 관리하여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차병진 충북대학교 수목진단센터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