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세상에서 가장 긴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학창시절에 한 두 번쯤은 들어보았던 퀴즈일 것이다. 현재 영어사전에 등록된 가장 긴 단어는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이다. 무려 45글자로 돼 있다. 이 단어는 National Puzzlers` League라는 모임의 회원들이 장난 삼아 만든 단어다. 단체의 회원들은 이 단어를 유명 영어사전에 등록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했고, 결국 1936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오르게 된다.

처음 이 단어를 보면 말도 안되게 긴 길이에 압도될 것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이 단어가 여러 단어들로 조합된 것을 눈치챌 것이다. 이 단어는 Pneumono(폐), ultramicroscopic(초미세), silico(규소), volcano(화산), coniosis(질병)이 합쳐진 말이다. 그대로 해석해보면 화산에서 생성된 초미세 규소가 폐에 오랜 시간 축적되어 발생하는 폐질환이라는 의미다. 흔히 진폐(pneumoconiosis)라고 불리는 질병을 뜻한다. 진폐증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탄광지대의 광산근로자에서 자주 발견되는 병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 단어는 필자가 이전에 소개했던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셀수스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위스 출신의 의학자이자 연금술사, 점성가였던 그는 현대 독성학의 중심을 관통하는 `모든 물질은 독이다. 다만 독인지 약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용량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파라셀수스는 광산지대에서 자라며 광물에 친숙하게 되고 이 광물을 분류하고 활용하는데 익숙했다. 이런 배경은 파라셀수스가 연금술에 몰두하게 되는데 한몫을 하게된다. 당시 의학의 흐름은 질병의 원인이 체액의 불균형과 부조화에 인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외적 인자보다는 내적 인자에 원인을 둔 것이다. 하지만 파라셀수스는 질병의 원인이 외적 요인이며 그 치료법도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분위기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리스 시대와 아랍권에서 정립된 당대 최고의 의학서들을 바젤대학 교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불지르고 과거 의학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새로운 의학 시대의 시작을 예고했다. 이후로 그의 삶은 평탄치 못했으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계속했다.

그가 주장한 외적 치료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은 주로 광물성 약물이다. 생약제에서 유래한 치료약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수은이나 황을 치료제로 사용했으니 다소 생소하고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치료제 도입으로 명성을 쌓게 됐고 훗날 이러한 치료법은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파라셀수스는 광부들이 잘 걸리는 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의 원인이 산신이 노해서 벌을 준 것으로 생각했지만 파라셀수스는 환기가 잘 안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분진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수 백년 전에 산업독성적 접근과 원인을 규명한 것에 감탄하게 된다. 파라셀수스는 광부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질환을 진폐증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게 된다.

수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파라셀수스 시대보다 발달한 문명과 진보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원인 모를 물질들에 의해 건강이 위협받고 있으며, 끊임없이 그 원인을 밝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만약 파라셀수스가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아마도 `모든 물질은 독이다` 라고 중얼거리지 않을까?.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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