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석 남대전농협조합장
강병석 남대전농협조합장
얼마 전 집안 정리를 하다 장롱 밑 서랍을 열면서 필자는 참으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필자가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누런 봉투들이 노끈으로 묶여서 차곡차곡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필자가 그동안 갖다 주었던 월급봉투를 집사람이 차곡차곡 모아둔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월급봉투라는 말은 무척 생소할 것이다. 지금이야 월급이 통장에 급여 날 정확하게 들어오고 내용은 각자 알아서 관심 있는 사람은 본인의 급여명세를 확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오늘이 또 월급날이지`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급여는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듯이 빠져나가기에 정신이 없다. 각종 공과금에 카드대금에 대출금 이자까지 통장에 입금 내역은 한 번인데 출금 내역은 수십 건이다. 아마 요즘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체감하는 월급날이 아닐까 생각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월급을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주던 시절이 있었다. 누런 마분지로 만든 봉투에 월급명세서와 함께 현금이 들어 있던 월급봉투. 두껍지는 않았지만, 그 봉투를 받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가장의 위신이 서는 듯했다. 봉투를 가슴에 품고 퇴근하는 길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월급날 퇴근길 버스에 오르면 왜 그리 떨리는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아 보지만 금세 채워지는 버스의 승객들로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한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고 퇴근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느껴진다.

동네에 도착해서는 마을 입구에 있는 통닭집에서 통닭 한 마리 사 들고 집으로 갈 때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아이들도 집사람도 월급날만큼은 아빠를 가정에서 최고로 대접해줬다. 월급날이라고 특별히 반찬도 더 만들어 남편을 세상 최고 대단한 사람으로 대우해주던 집사람의 모습. 한 달 동안 어렵게 자신들을 위해 돈을 벌어 온 아버지가 대단해 보인다는 듯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월급봉투가 아닌 은행 계좌로 직접 송금되는 시대에 사는 직장인들. 어떤 이는 월급이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면서 가장의 권위가 떨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집사람이 관리하는 통장에 얼마의 급여가 입금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월급날임을 알게 해주는 전부가 됐다. 내 월급이 어디에 얼마가 쓰이는지 이제는 내 권한 밖이 돼 버렸다. 아이들에게도 용돈을 현금으로 주며 `아빠가 이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렇기 때문에 아껴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남으면 저축을 하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이제 아이들도 필요한 용돈을 통장으로 받기 때문이다.

월급봉투의 퇴장과 함께 가장의 권위와 무게도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월급봉투가 없어졌든 없어지지 않았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해 오늘도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노력에 감사할 줄 아는 자식들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강병석 남대전농협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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