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법무부 대검 대변인과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이 모두 여성이 발탁됐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검찰의 중간 간부 인사에서 여성 검사들이 약진했다는 것이다. 남성 지배적인 구조를 보여 온 법무부에서 이런 변화가 있었다니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1980년대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후 요리사가 되겠다고 중국음식점 주방을 자원해서 들어갔다. 조리사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환영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어도 들어가서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방에 들어가는 첫날부터 그들은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방보조 자리라서 무엇이든 씻고 닦는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수도꼭지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자 "어디 여자가 주방엘 들어오느냐 더욱이 대학을 나온 여자가 왜 남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그들은 주방을 남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벼슬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한 과를 대표하는 학회장은 거의 남학생이었다. 어쩌다 여학생이 학회장에 출마하려고 하면 교수님께서 딸이 똑똑한 것은 좋지만 똑똑한 딸로 인하여 아들이 치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교수님의 생각도 한 학과의 장은 반드시 남자가 맡아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계셨다.

3천 년 전 <시경·소아·사간>에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마루에 누이고 옷을 제대로 입히고 장난감을 줘라. 우는 소리가 우렁차면 장차 귀한 사람이 될 것이니 빛나는 홍색 옷을 입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땅바닥에 뉘이고 장난감 대신 깨진 그릇 조각을 갖고 놀게 하여라. 아이가 자라면 복종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술 담그는 것과 밥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조속히 배우자를 찾아서 시집을 가서 부모님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이미 3천 년 전에 규정 지어진 것이다.

가정에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 일 난다는 말은 또 어디서 온 것인가? <맹자·양혜왕상>에는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왕 노릇 잘하는 방법에 관해 묻는 구절이 나온다. 일명 곡속(觳觫)장이라고도 한다. 왕이 당상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소가 한 마리 지나가고 있었는데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왕이 물었다. "저 소는 왜 저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느냐" 그러자 신하가 "종을 만들 때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각 조각을 모두 잇고 나서 마지막에 소피를 바릅니다. 이 과정을 흔종이라 하는데 저 소를 잡아서 흔종에 사용할 피를 구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왕은 "내가 그 소를 보았고 소를 잡으려면 비명을 지를 터인데 그것을 보고 내가 어찌 그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군자는 주방을 멀리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일`로 변질이 되어 여성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밥하는 일`을 고유의 업무로 여겨 평생을 그저 숨죽여 살아야 했으니 이 얼마나 국가적인 낭비 아닌가.

중국이 개혁 개방을 외칠 때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주창했다. 검은 고양이이던 흰 고양이이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은 다소 진부해 보이지만 곱씹어볼수록 명언이다. 국가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녀를 구분할 것이 아니고 할 수 있는지와 할 수 없는지를 구분해서 할 수 있는 자를 전진 배치해야 하고 여성들은 더 이상 겸손과 인내를 미덕으로 삼지 말고 자신감과 천재성을 밖으로 꺼내어 펼쳐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세밀한 통찰력과 특유의 직관력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은 불평등했던 것을 평등하게 바꾸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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