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ETRI 기술기획전략실장
이승환 ETRI 기술기획전략실장
동물행동학의 창시자인 콘라트 로렌츠가 발견한 `각인효과`라는 것이 있다. 갓 태어난 새들이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기고 따라다니는 현상이다. 머리 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되기 때문에 돌이켜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1998년 IMF로 인해 모 출연연구소 입사가 좌절되어 3년 남짓 벤처를 다니기도 하고 운영도 했었던 필자에게 2001년 입사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그런 효과를 일으켰다.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 뇌는 정보 자체보다 그것들의 차이에 반응한다고 한다. 아마 ETRI의 좋은 첫 인상이 그 전의 고생했던 경험과 차이가 매우 컸기 때문에 필자의 머릿속에 필자가 속한 조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혁신`이라는 단어가 강하게 새겨진 듯 하다.

벤처 경험으로 인해 개발에는 능숙했지만 연구 전문성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2004년 휴직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2007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과제책임자로서 팀을 이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혁신을 실천하게 됐다. 처음에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혁신에 대한 구호와 의지만 있었을 뿐,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이론적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평창 ICT 올림픽 준비를 위해 2015년 이동통신 전문위원으로서 미래창조과학부에 파견을 갔다. 혁신을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서부터 국회 예산에 이르기까지 출연연의 연구개발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출연연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 3자의 입장에서 내가 속한 조직을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었다. 2017년 기획부서로 복귀해서 원 차원의 혁신을 실천했다. 이동통신 분야가 아닌 ICT 분야로 공학적 지식을 확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공학적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개인이나 조직의 이해관계에 대한 조정도 필요했다. 그래서 2018년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기술경제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서 연구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조직이나 인사에 대한 혁신 방안을 연구해볼 수 있었다. 2019년부터 기술기획전략실장으로서 `ETRI 중장기 기술발전지도 2035`와 `전주기 통합사업관리 체계`를 수립했다. 그동안 혁신을 위해 실천하면서 쌓아온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녹여낸 것으로, 기관의 미래상 수립 및 이의 실현을 위한 과제기획과 성과관리에 관한 내용이다. 필자 혼자였다면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원장님을 비롯해 혁신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동료 선후배님들의 더하기 사고(思考)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혁신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혁신을 위한 도구의 첫 번째 판을 만들었을 뿐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활용을 통해 개선보완과 축적발전을 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 차원으로 승화되어 우리나라가 인류의 미래를 선도하는데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혁신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수처작주(隨處作主)`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승환 ETRI 기술기획전략실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