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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이상한 도시의 아파트 공화국

2021-06-23 기사
편집 2021-06-23 07: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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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1982년 윤수일 밴드의 '아파트'가 발표됐고, 이후 노래깨나 부른다는 취중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이 모던하고 쓸쓸한 도시적 낭만의 감수성과 애틋한 사랑의 노래를 가능케 한 사회문화적 저작권은 누가 뭐래도 도시 곳곳에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아파트에 있다. 이 노래의 인트로처럼 '띵동~띵동'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초인종을 누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아파트를 꿈꾼다. 고로 존재한다.

하나마나 한 얘기지만 한국 사회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아파트는 자산증식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품목이며, 경제적 지위와 신분 계급까지를 두루 표지하는 상징기호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한국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곧 아파트 구입이다. 하여 나는 아파트를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질이 부모 복도, 빚낼 여력도 용기도, 하다못해 배포도 운도 타고나지 못한 장삼이사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윤수일의 노래처럼 그것은 결코 낭만적 감흥의 대상이 아니다.

아파트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마땅히 거처해야 할 궁극의 보금자리, 경제적 성공과 행복한 삶을 대변해주는 지표다. 고층화된 높이와 거대화된 면적에 비례해 부풀어 오른 욕망 충족을 위한 불패신화의 재테크 수단이다. 무엇보다 부와 계급을 차별적으로 현시하는 강력한 상징적 표지 가운데 하나다. 욕망의 부피만큼 치솟은 아파트는 마치 첨탑에서 자신의 영지를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중세 성주의 시선의 권력과 욕망을 연상케 한다. 현대판 성주들에게 중세 성주의 기품이나 풍모 따위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럼에도 이름난 아파트 이름은 하나같이 무슨 팰리스니 캐슬을 반복적으로 추구한다. 난 왕이야, 영주야!

아파트를 다층구조의 살림집으로 이해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왜냐면 이놈은 획일적이며 규격화된 방식으로 전체적 동일성을 반복 현시함으로써 스스로 겉과 속이 다른 실체를 수시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놈은 대개 겉은 주거가 존재 이유인 척하면서 속은 투기와 시세차익을 노린 경제동물들의 해방구로 기능한다면 과장일까. 이런 속성은 테크노피아, 혹은 엑조티시즘의 이국적 정취, 예컨대 영국식 정원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모델하우스의 모형과 현대판 신화적 영웅들이 등장해 삶의 질적 가치를 높이자고 속삭이는 광고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국 도시의 독특한 아파트 주거문화를 본격 연구한 이는 국내 학자가 아닌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라는 지리학자다. 우리에겐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으로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서구인의 시선으로는 아파트를 이상적 주거 모델로 추앙하고, 주택을 무슨 유행 상품처럼 쇼핑하며, 또 몇 채씩 소유하는 한국 사회를 납득은커녕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던 모양이다. 획일적이고 볼품없는 반미학적 건축미와 도시 폭력의 상징, 이상한 도시의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의 눈에 우린 아파트 중독자다.

우리는 그녀의 연구가 아니라도 도시화 과정에서 비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이 아파트라는 일반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보단 국가-재벌-중산층 간 삼각 욕망의 합(合)이 만든 결과라는 사실을 상식으로 안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계급 구조의 토대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여기에 영혼까지 바친다. LH 직원들이나 고위 공직자, 국회위원들처럼 웬만한 사람들의 전방위적 부동산 소유나 투기는 사회적 실천윤리나 덕목이 된 꼴이다. 이즈음 읽은 책이 공교롭게도 만화 '안녕 커뮤니티'다. 작중 덕수 영감의 자조 섞인 탄식, "진짜 열심히 살면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좋은 세상 온다드만. 나는 와 이래 아무것도 남은 게 없노." 이게 열심히 살아온 한 생애의 결실, 우리가 처한 현실, 이미 와버린 미래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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