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겐 보이는 사실에 근거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모든 과학적 근거들은 조작되었다며, 일부는 음모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로켓을 만들어 시험 발사를 하였다. 애석하게도 시험은 실패로 끝났고 로켓에 탑승한 사람은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도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들만 믿으며, 자신이 믿는 것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종종 눈으로 보이는 한 가지 현상만을 보고 전체를 파악하려고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확증편향으로 인해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들만 수집하고 그것에 맞추어 해석하는 불완전한 증거의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고 그 속에 숨은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과학적 발견이란 바로 이런 숨어있는 본질을 밝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자연 또는 사회 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상관관계와 내재된 본질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관측된다고 해서 둘이 꼭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에서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야 그 속에 숨겨진 본래의 뜻을 알 수가 있다.

일례로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사고를 살펴보면 분명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인과관계도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 익사사고를 줄이기 위해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지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위라는 본질을 이해한다면 아이스크림 판매가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듯 상관관계에 놓였다고 반드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소아과학계에서 미네소타주의 공립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몸무게 패턴을 조사한 적이 있다. 아침식사를 규칙적으로 한 청소년들이 포화지방의 비율이 낮고 섬유질과 탄수화물을 더 섭취했으며, 비만율이 훨씬 낮다고 발표했다. 자료에서는 아침식사와 비만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를 접한 사람들은 은연중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실제로 아침 식사와 비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우리가 파악하기 힘든 다양한 개인적, 가정적, 유전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떠한 현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 중요하다. 왜냐하면 위의 예시에서와 같이 잘못된 결론으로 인해 잘못된 대책을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연구과정은 다양한 현상들 속에 숨은 법칙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근본적인 원리를 밝혀낼 수도 있고, 미래 상황을 예측해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어떤 현상을 관찰할 때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흔히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한다. 우리는 결국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각자 자신의 마음에 투영된 대상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만을 얻고자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연구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필자도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사심 없이 있는 그 자체로서 대상을 연구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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