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어렸을 때 배탈이 나면 어머니가 배를 살살 문질러 주시면서 주문처럼 반복하셨던 말씀이 있다. "엄마 손은 약손." 특유의 박자와 음의 고저가 있는 이 주문을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보셨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가벼운 증상의 경우에, 엄마 손은 실제로 약손인 것처럼 아픈 배를 깔끔하게 치료하는 효과를 발휘하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병을 치료하는 데 전혀 효과가 없는 물질이나 행위일지라도 우리가 효과가 있다고 믿으면 통증을 경감시키고 병을 치료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위약 효과 또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한다. 즉, 가짜 약이 진짜 약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환자들에게 설탕을 코팅해 만든 가짜 약을 아스피린이나 모르핀이라고 속여 제공했다. 결과에 따르면, 환자들은 화학적으로 아무런 치료적 효과가 없는 작은 설탕 알갱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짜 약을 먹었을 때처럼 통증이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진짜 약을 먹었을 때와 동일한 정도로 통증이 완화된 것은 아니었다. 진짜 약의 효과와 비교해 약 50% 정도에 해당하는 통증 경감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통증감소와 전혀 무관한 물질이 실제 약물의 절반에 해당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약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가짜 약을 진짜라고 믿게 되면 뇌에서 엔도르핀(endorphin)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엔도르핀은 인간의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통증 정보가 뇌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해 우리 신체가 경험하는 통증의 정도를 경감시키고, 면역기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위약 효과는 막연히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 또는 판단오류가 아니다. 신체에 실제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리적 성분상으로는 가짜 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약처럼 우리 뇌의 생화학적 변화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통증을 경감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 손의 효과도 바로 위약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약손의 비밀은 바로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믿는 아이의 뇌에서 분비된 엔도르핀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손에서 우리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물질이 분비돼 아팠던 배를 치료한 것이 아니고,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믿음이 자신의 뇌에서 스스로 통증을 완화시키는 물질을 분비하게 해 배의 통증이 사라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토록 빠른 효과를 나타내던 어머니의 약손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 점점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머니의 손이 약손이라는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의 약손은 점점 약효를 상실하고 만다.

대체로 엄마 손이 약손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시기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 아이들에게는 엄마 손이 약손의 효력을 발휘하는데, 크리스마스 때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몰래 놓고 간 사람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 아동에게는 엄마 손은 더 이상 약손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만들어냈던 어머니의 약손이 우리의 믿음이 깨지면서 그냥 평범한 맨손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은 약손으로 위력을 발휘할 때나 위력을 상실한 평범한 맨 손으로 남겨졌을 때나 똑같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손이다.

세월이 흐르면 약손은 야위고 주름진다.

하지만 내 손을 잡아주는 약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약손은 그리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잡아주는 그 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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