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시계를 볼 때 유독 4시 44분이라는 시간을 자주 본다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4자가 세 개나 겹치는 시간을 보고 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나에게 닥칠 앞날을 예시해 주는 징조일까. 괜히 기분이 찜찜하다. 하지만, 이것을 과학적으로 풀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뇌과학 용어 중 `폰레스토프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효과는 차이가 분명한 사물을 보편적인 사물보다 더 잘 기억하는 현상을 말한다. 독특하거나 특이한 사건, 사물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시간을 보고 잘 기억하지는 않는다. 4시 44분처럼 똑같은 숫자가 그것도 우리 동양권에서는 불길하게 여긴다는 숫자가 세 개나 겹치니 그 기억이 오래 남아 시간을 볼 때 꼭 이 시간이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해 늦여름 물난리가 났을 때도 뉴스 인터뷰에 나온 시민들이 하나같이 얘기했던 것이 "내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도 그만큼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을 생각해 보자. 좋았던 시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안 좋은 기억만 있을 뿐 좋은 기억이 없다. 쌀 수입개방으로 농민들이 분개했던 일, 우루과이라운드, FTA 등 국제무역협상에서 마트 미끼상품처럼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협상을 쉽게 하기 위해 내어주는 분야가 바로 농업 분야였다.

우리 농업은 정말 좋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농업인은 피해의식을 더 느끼는지 모르겠다.

당장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 지원만 하더라도 그렇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프리랜서 지원 등은 진작부터 이루어지면서 농업 분야에 대한 지원은 올해 추경예산을 통해서 처음 지원됐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3차까지 소외됐던 재난지원금이 농어업 분야에 지원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추경안에 대해서 농업인단체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0.5㏊ 미만 농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지급의 경우 전체 농가 인구 대비 20%에 불과하며,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농가들은 여기서 제외됐다는 게 농업인단체들의 주장이다.

언제까지 우리 농업은 천덕꾸러기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올해는 잦은 비와 저온현상으로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올 농사가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실제로 저온현상으로 사과와 배의 꽃이 제때 피지 못하고 떨어져 수확량 감소가 예상된다. 또 5월 잦은 비바람으로 양봉 농가들의 꿀 수확량은 평년의 40%에 불과하다고 한다.

농업 분야에 많은 피해가 있지만 어디다 대놓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저 날씨 탓, 운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농업인들이 버텨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농업화와 청년농업인 유치는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향만을 꿈꾸는 정책일지 모른다.

현재 농업 분야에 대한 최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미래 농업에 대한 장기적 계획과 투자가 진행되어야 균형 있는 농업 발전이 있을 것이다. 당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만을 제시하는 정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어렵다.

이제는 이런 우울한 기억을 지워 버리고 우리 농업 분야에도 기분 좋은 기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힘들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희망을 갖고 농업에 전념할 수 있는 그런 농업정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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