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희 충남대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대한의지보조기학회 회장
조강희 충남대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대한의지보조기학회 회장
얼마 전 한 유명 연예인이 SNS에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제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자신의 오빠가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말기 암 상태로 인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하면서다. 한참 일할 젊은 나이인데 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고,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암이나 중증 난치병을 진단받으면 사람의 심리 상태는 의사 진단이 잘못됐을 것이라고 부정하게 된다. 이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다시 진단을 받아본다. 환자는 진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면 "왜 하필 나에게"라는 분노에 이어 "내 자식이 결혼이나 졸업할 때까지만"이라고 타협을 하게 된다. 이후 슬픔과 침묵에 빠져서 우울을 겪다가 마지막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시작하는 수용의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암환자 가족이자 의사인 필자도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으면서 서운함과 쓰라림에 가슴이 쪼개졌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선 새로운 항암 치료법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있기에 기적적으로 완치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수명이 연장되기도 하니 기대를 완전히 접지는 말기를 바란다. 다만, 의사 권유대로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도 암 진단 당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돌이켜 봐도 담당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척수손상재활을 주 전공으로 하는 재활의학과 의사이다. 척수손상에 의한 사지마비나 희귀난치병으로 점차 진행해 수년 내에 사망하는 질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재활치료를 하는 게 주된 일이다. 완전마비 척수손상이 발생하면 발병 후 1년이 경과한 시점 즉, 충분한 치료와 자연 회복을 위한 시간이 경과한 다음 다시 걸을 수 있는 확률은 5%다. 1년이 지나서도 완전마비 상태이면 추후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 이런 환자를 만나면 제일 먼저 환자와 가족에게 진단명과 관련 예후를 정확하게 알려주려 한다. 그래야만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장애가 있지만 사회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능을 회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에게는 불필요한 치료에 따른 시간·육체적 손해와 더 중요한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실제로 완전하지마비가 사고로 발생한 후 재활치료를 받은 한 30대 회사원은 초기부터 정확한 예후를 알고 내원해 3개월 후 본인이 운전해 차를 몰고 퇴원했고 회사에도 복귀할 수 있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희귀난치병의 경우 첫 진단에선 최선을 다해 치료받으면 호전될 수도 있다고 희망을 준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가족과 환자에게 정확하게 예후를 알려줄 수밖에 없다.

한번은 다친 지 1년 이상 지난 완전 척수손상환자가 `다시 걷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인의 소개로 재활치료를 받고 싶다며 내원했을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기대에 찬 환자와 그 가족들은 필자의 얼굴만 쳐다보며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필자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초기 재활치료 과정의 환자가 기대만큼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정확한 예후를 알게 된 환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해 오히려 장애를 악화시키는 등 극도의 분노의 심리 공황 상태에 빠지는 사건을 여러 번 의사로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해야만 올바른 해결책이 나오듯, 질병 치료 과정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좀 더 친절하면 좋겠지만, 이런 중증질환을 환자에게 설명할 때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 부정으로 시작한 환자의 심리 상태가 최선의 치료를 하는 수용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무사히 지나도록 돕는 것도 역시 의사의 할 일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이 장애와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조그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조강희 충남대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대한의지보조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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