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얼마 전부터 도로에 보이기 시작한 `안전속도 5030` 정책 홍보문이다. 주요 내용은 도시부 제한속도를 기본 50㎞/h, 보행 위주 도로 제한속도를 30㎞/h로 각각 조정하는 것이다. 실시 목적은 보행자 안전이다. 차량 속도를 10㎞/h 줄이면 제동거리가 25% 줄어 교통사고 발생을 낮추고 사망 가능성 또한 30% 정도 낮출 수 있다.

차량 속도가 줄어들수록 보행자 교통사고나 사고 시 사망이 감소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한없이 속도를 줄이기는 곤란하다. 각종 도로 환경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속도 제한은 교통 흐름을 저해하고 체증을 심화시켜 시간·경제·사회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 평상시 과속 주행을 하다가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력을 줄이는 운전 습관을 가진 경우 오히려 급감속을 야기해 차량 간 교통사고가 늘어날 우려도 있다.

지난 2005년 부산 한 어린이놀이터에서 부서진 그네에 깔려 10세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후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제정됐다. 법에 따라 만 10세 이하 어린이가 이용하는 그네와 미끄럼틀 등 모든 놀이시설을 대상으로 2년에 1회 이상 안전검사기관의 정기시설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는 비용이 소요된다. 법규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미끄럼틀 하나당 6만 1800원, 그네 하나당 4만 2700원 등이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시설의 경우 이 비용이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된다. 어린이 안전을 위해 2년에 1회 정도 비록 본인의 집에 아이가 없더라도 비용을 부담하는 데 대부분의 입주민이 동의할 것이다.

만약 안전 강화를 이유로 점검 주기가 2년 1회에서 2주 1회로 변경된다면, 더 나아가 현재 물놀이시설에만 배치하게 돼 있는 안전요원을 놀이터에도 필수로 배치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입주민들 특히, 어린이가 없는 가정에서 관련 비용 징수에 대한 반발이 생길 것이다. 놀이시설 이용 연령대가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만 안전부담금을 징수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이런 제안에 대해 해당 가정에서 안전부담금을 거부하고 놀이터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결국 놀이터를 없애자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될 것이다.

안전 요원을 배치한다면 당연히 사고가 줄어들 수 있고 치명적 사고시 빠른 조치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안전사고 발생 확률이 극히 낮은 미끄럼틀이나 그네 옆에 안전요원을 두는 것은 과잉이다. 안전강박증이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입안 실무자들이 2년에 1회 점검이라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해 정말 다행스럽다.

지난해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교통법규가 강화됐다. 교통약자인 어린이 안전을 위해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 과속 카메라 추가 설치 등 단속 강화는 물론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가중됐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꿈나라에 가 있을 한밤중이나 학교 주변에 어린이들을 보기 힘든 휴일에도 속도 제한이 강제되는 것은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 비어 있는 놀이터를 안전요원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안전속도 5030에 의해 모든 주택가·상가 인접 도로에서 속도 제한이 밤낮으로 시행된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에서 사람은 물론 보행자를 뜻한다.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없는 지금, 달리는 모든 차 안에는 `사람`이 있다. 운전자의 시간과 안전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장소를 옮겨가며 해야만 하는 일의 경우 이동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수입 감소를 의미하고, 같은 정도의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됨을 의미한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제한 속도를 맞춰야 하는 퇴근길 운전에 녹아내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안전불감증 못지않게 안전강박증도 문제다. 보행자 안전은 보장하면서도 새 정책 시행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해 본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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