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2007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고흐전이 열렸다. 그때 아이들은 초등학생으로 현장체험 학습을 이유로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관람객은 초만원이었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전시를 감상하기 만만치 않았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장을 반쯤 돌았을 때 벽 전면에 걸린 큰 그림 하나가 갑자기 눈에 훅 들어왔다. 그 그림은 고흐가 세인트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그린 그림이었다.

고갱과 논쟁 끝에 자신의 귀를 잘랐고 아르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끝에 마을에서 쫓겨나 수십킬로 떨어진 생-레미의 세인트 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데 해당 그림은 그 병원의 정원 풍경이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나의 모든 시간은 멈추었고 수많은 인파의 소음과 움직임 모든 공기는 차단되어 나와 그림만 마주하는 극단의 시간이 왔다. 그 순간 숨이 멎을 듯 어지럽고 몽롱하고 가슴이 뛰고 마음이 쿵쿵거리고 순간 바닥에 털썩주져 앉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뒤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아이들은 당황과 걱정으로 나를 붙잡고 있었다. 싱그럽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의 그림은 황량하고 피폐해진 고흐의 몸과 마음과는 다른 극명한 대조를 보인 풍경이었다.

후에 뛰어난 예술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곤란과 현기증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스탕달 신드롬이라 부르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1885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개관하자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 그는 렘브란트의 `유대 신부`를 보고 함께 간 친구들이 전시장을 모두 보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흐는 그림 앞에서 2주만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남은 수명 10년이라도 떼어 줄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인 마크 로스코는 추상표현의 대가이자 평면 회화의 혁명가로 불린다. 그의 작품 중에서 특히 직사각형의 화면에 검정과 빨강을 대비시킨 대형화폭을 감상하다가 졸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어떤 상황에서 순간 훅 들어와 숨겨진 우리들의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상황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버거울 만큼 많은 고민이 있을 때였다. 나에 대한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흐에 대한 것을 공부하면서 내가 그 그림과 교감한 이유를 알았다.

강제 수용된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유일하게 안식의 시간이 그림 그리는 시간이었고 고흐가 어느 정도 병원에서 안정되자 그린 그림이기도 했다. 그나마 육아와 일상에 지친 내게 당시 유일한 도피처로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 투어 다니는 일이었는데 고흐의 안식과 나의 안식이 충돌된 지점에 그 그림이 있었다. 그림은 1889년 그려진 그림으로 백 년의 시간을 교감한 그 사건은 평범한 전업주부 인생을 미술의 세계로 이끌었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그림은 늘 친구처럼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주는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누구에게나 삶이 그렇듯 인생의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분명 위로가 되는 것이 있고 그것이 무엇이든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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