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얼마 전 한 유명 유튜버의 갑질 논란이 있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 직원들이 한 기업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 그의 폭언과 독단 그리고 소통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인 학대를 폭로하는 후기를 남긴 것이다. 결국 그 유튜버는 자신의 방송을 통해 각종 갑질 의혹을 해명하고 사과했지만, 지금까지 착한 방송을 통해 얻은 그의 모범적인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착한` 이미지로 크게 성공한 유명인이 직장 내 갑질 논란에 휘말리면서 직격탄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싸이와 BTS가 출연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엘런 디제너러스 쇼` (이하 `엘런`)의 진행자인 엘런 디제너러스가 그 주인공이다. 디제너러스의 재치 있는 유머와 친근한 진행은 `엘런`을 인기 토크쇼로 만들었고 무엇보다 "친절히 해라(Be Kind)"라는 구호로 `착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전·현직 직원들이 폭언, 인종차별, 그리고 성차별이 난무한 `엘런` 제작의 근무 환경을 폭로하면서, 그 `착한` 이미지에도 균열이 생겼다. 갑질 의혹을 받은 3명의 책임 프로듀서들은 곧장 해고됐고, 직접 갑질에 가담한 증언은 없었지만 `엘런`의 총 책임자로서 `폭압적인(toxic)` 근무 환경을 인지 못 한 디제너러스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게 됐다. 결국 디제너러스는 `엘런`의 18번째 시즌을 여는 첫 방송에서 사과했지만, 오랫동안 밝고 친절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한 이유에선지 `엘런`은 전 시즌 대비 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잃었고 디제너러스는 토크쇼의 계약이 끝나는 2022년에 `엘런`을 떠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디제너러스처럼 `착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직장 내 갑질 논란으로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또 한 사람, 바로 스캇 루딘이다. 얼굴이 잘 알려진 스타가 아니어서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지만, 루딘이 제작한 수많은 영화들은 낯이 익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로서 루딘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트루먼 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을 제작하면서 오스카 후보에 151번 올라 23번 수상했다. 영화 외에도, 브로드웨이에서 `북 오브 몰몬`과 `헬로 달리!` 등으로 큰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토니상을 17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루딘이 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직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학대를 가해왔으며 그의 횡포로 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거나 아예 연예 산업을 떠났고 심지어 자살 시도의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도 있었다고 `할리우드 리포터`가 올해 4월 폭로했다. 이 보도 후 몇몇 뮤지컬 배우들은 루딘이 브로드웨이를 떠나지 않거나 비상식적인 제작자의 횡포를 방조하는 브로드웨이의 제작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루딘에 대한 폭로가 계속 잇따르자 루딘은 결국 사과와 함께 현재 자신이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엘런`쇼와 루딘의 갑질 사건을 다루는 보도들은 대부분 갑질을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며 폭압적인 근무 환경의 원인을 갑질한 상사 개인의 자질 문제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막강한 갑질 상사만 사라지면 폭압적인 근무 환경은 저절로 개선되는가? `엘런`쇼와 루딘의 갑질 의혹은 미국 연예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소문으로 돌았지만, 그에 맞서 폭압적인 제작 환경을 바꿔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미국 연예 산업의 심각한 수직 구조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그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만들었고 서열 낮은 직원들의 희생과 학대를 정당화했다. 상하 위계 질서에 따른 경직된 수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히드라의 머리처럼 잘린 갑질 상사의 자리는 다른 갑질 상사로 대체될 것이고, 조직의 침묵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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