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전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유발한다. 전쟁은 국가, 민족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처럼 작은 단위에도 수십 년 동안 커다란 시련과 고통을 안긴다. 국가적 차원의 전쟁 속에서 한 개인이나 가족은 너무도 쉽고 무참하게 그것에 짓밟히고 희생될 수 있다. 아래는 6.25 전쟁과 관련하여 필자가 경험했던 가족사이다.

필자는 친할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발발한 6.25 전쟁의 민간인 희생자이셨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에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바느질하고 계셨다. 그날따라 마당에서는 몇 명의 동네 아이들이 이상한 물건을 가져와 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욱 시끄럽게 움직일 때, 갑자기 커다란 폭발 굉음이 온 집안을 뒤덮었다.

그 폭발과 함께 할머니는 피를 토하시며 마루 위에 쓰러지셨다. 가슴에서도 피가 쏟아져 내렸다. 쇳덩어리 파편이 가슴부위를 찢고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즉사하였다. 폭발로 인하여 아이들의 머리와 사지는 모두 찢겨 나가서 원래 형체는 분간할 수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그 물건은 다름 아닌 6.25 전쟁에서 군인들이 사용하던 전투에서 적을 살상하기 위한 수류탄이었다.

군인들의 부주의로 어딘가에 떨어져 있던 그 수류탄이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손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수류탄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아이들은 그 수류탄에 꽂혀 있던 안전핀에 호기심이 자극되었을 것이고, 그중에 한 명이 결국 그것을 뽑았을 것이다.

당시는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열악하여 민간인이셨던 친할머니는 적절히 치료받으실 데가 없었다. 의료기술과 지식이 없었던 마을 분들의 간호를 받았으나, 당일 오후 약 5시 무렵에 결국 절명하셨다.

손자인 필자가 예측하건대, 할머니의 사인은 폭발로 인한 충격과 과다출혈, 그리고 할머니의 가슴에 파고든 파편이 일으킨 극심한 통증에 의한 쇼크사일 것이다.

사고 후 돌아가실 때까지 약 6~7시간 정도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만약 즉시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으신 후 의료진의 치료를 받으셨더라면, 아마도 생명을 건지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모님으로부터 친할머니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이러한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고모님께는 친할머니께서 이토록 허무하고 황당하게 돌아가신 것이 평생 가슴에 맺혔던 씻을 수 없는 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던 고모님은 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다. 고모님이 돌아가실 때, 나는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한 가족이 당해야만 했던 슬픔과 고통도 함께 묻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이러한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희생된 당사자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후유증은 적어도 희생되신 그분으로부터 3대에까지 내려간다.

나라가 너무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웠기에, 6.25 전쟁이 끝난 후 민간인 희생자들은 그냥 흘러 가버린 역사 속에 매몰되어 버렸다. 전몰장병이나 군경 유가족이 아닌 한,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갑자기 희생된 민간인들과 그 유가족들에게는 관심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을 위해서, 또한 그 후대를 위해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토록 힘들고 어렵게 애써 다시 일군 이 나라에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냉혹하고 치열한 국제관계 속에서, 그땐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기가 영영 불가능할 수 있다. 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