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지난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유쾌한 반전이었다. 그 진의가 궁금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 대외정책에 많은 변화가 목격되었다. 북한 인권, 쿼드(Quad), 미국의 첨단기술 공급망 협력 등 기존에 회피했거나 주저했던 일들에 있어 용기를 낸 점을 높게 평가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정상회담 후폭풍이 있을 수 있기에 철저한 준비와 일관성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해 온 문재인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미국의 강한 요청이 있었거나,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포함시키기 위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이 어떻든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올바른 선택이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지난 5월 2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인권 문제 제기는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함으로 인해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에는 부담이 따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포함시켜 북한을 대화로 유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남북간 북미간 약속에 기초`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남북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나 북미간의 `6자회담 9.19 공동성명`도 포함되는 것이다. 북한의 큰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 성킴 대사를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공언한 유연한 외교를 구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의 조건`을 분명히 했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 문제 거론으로 인해 북한이 긍정적으로 화답할 가능성은 적다. 그 결과 북한과의 대화는 지연될 것으로 보이는데, 유의해야 할 점은 대화를 위해 또다시 북한 인권에 관한 입장을 바꾸는 악수(惡手)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나마 쌓아놓은 한미간 신뢰를 다시 저버리며, 누구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중국 관련 입장 전환은 더욱 극적이다. 그간 미국으로부터 요청받은 바도 없다고 말해왔던 쿼드를 처음으로, 그것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했다. 더 나아가 한중 수교이래 처음으로 대만해협 문제도 언급했다. 비록 그 발언 수위를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간 중국이 금지선으로 말해온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이기에 그 파장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는 `한미 미사일지침` 폐지 역시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은 북한을 대상으로 했던 한국의 미사일 개발 800km 사거리 제한을 풀며, 중장기적으로 중국을 잠재적 대상으로 하는 한국군의 역량 강화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불만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중국의 반응은 그리 격렬하지 않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에 불이익을 가해올 수 있기에 철저한 사전대비가 필요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국에 대한 250억불 투자에 비해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적다는 점이다. 한국군 장병들에 대한 백신 제공을 약속받았지만, 당초 예상했던 백신 스왑이나 조기 백신 확보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대미 협상력 제고가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 강화에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한다. 향후 더욱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비난이나 중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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