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를 모실 묏자리가 정해지자 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었다. 형과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묏자리 위에 작은 제단을 만들고 준비해간 제물로 산신제를 지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뫼를 쓸 자리에 나무도 베고 땅도 파야 해서 산제를 올리고 미리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하셨다. 어린 내게 아버지의 그 모습이 강하게 각인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서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그 특별함을 배우셨고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조상들은 늘 그렇게 해 오셨던 것이다.

그 뿌리에는 자연을 생명으로 인식하고 경외의 대상으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과 철학이 배어 있는 것이다. 물이 우리의 몸과 자연을 구성하는 근본이라 생각하지 않고 단지 H2O라고 정의하고 인식한다면 그 안의 생명력이 온전히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듯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 인가에 대한 사유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동양적 사유체계에서 만물은 하나의 원천에서 생성됐다는 연결성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은 연결돼 있는 것이고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연의 질서에 조화롭게 더불어 함께할 때 건강한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몸도 오장육부와 팔다리가 이러한 자연처럼 연결됐다. 한의원에 가면 체하거나 배가 아플 때 배가 아닌 손끝이나 발끝에 침을 놓아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연결성의 원리는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서로 연결돼 있고 호혜와 상생의 관계인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결국 자연이 치유와 삶을 재생시켜 주는 근원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난치나 불치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치유됐다는 뉴스를 보면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우리 몸에 병이 생기면 치유의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가 건강한 자연과 함께 하는 것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결국 자연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 삶을 지탱해 주고 풍요롭게 해주는 대상이라는 인식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건강하게 살기를 소망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가난하던 시절에 최고의 몸 보신은 삼계탕 같은 음식을 통해 단백질 등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것 이었다. 오늘날에는 한여름 복날 삼계탕을 먹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영양과잉 시대에 과잉영양 섭취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결국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 공기를 깨끗이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아울러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 출발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과 자세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 조상들께서 나무 하나 베어내고 땅을 파헤쳐 땅속의 생명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에 늘 겸손하고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던 마음과 자세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덕목이다. 결국 자연을 우리 존재의 근원이며 우리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대상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되고 우리의 삶도 지속 가능하다. 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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