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길 시인

봄을 꿈꾸는 왕버들

김선길

주산지 주인은

역사를 품은 채

나이 잊은 왕버들

여린 회색빛 바람이

버들 끝을 간질이니

철 이른 봄이 어린다

무엇이

저 무거운 시간의 무게를

침묵으로 버틸 수 있게 한 것일까

석양의 은빛 윤슬

봄을 머금고 빛나는 동안

알몸으로 춤을 추는 주산지

도망 못 가는 버들 운명 따라

휘어진 솔가지도

휘늘어진 능수버들도 몸을 푼다

온몸으로 꿈을 푸는 버들 앞에

노을빛에 산 그림자

봄으로 들어간다

봄빛이 감도는 주산지를 산책하노라면, 왕버들의 초록이 짙어짐을 느끼게 된다. 청송 주산지는 왕버들의 군락지로 물안개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물안개가 낀 주산지는 참으로 많은 매력을 간직한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사진에 등장하는 곳이다. 그리고 저수지 한가운데에 나보란 듯이 서 있는 그 유명한 왕버들. 세월의 흔적을 용트림하듯 뒤틀린 왕버들은 오늘도 내일이면 역사가 되는 세월 앞에서 오랜 세월 잘도 버티며 살아오고 있다.

그들은 주산지의 주인으로 나이를 잊은 채 또 한 번의 봄을 맞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무엇이 / 저 무거운 시간의 무게를 / 침묵으로 버틸 수 있게 한 것일까`하고. 버들이야 침묵하든 말든, 주산지의 물결은 바람을 타고 `나 봐, 나를 좀 봐줘`라고 온몸으로 자랑스럽게 윤슬을 만들어 내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도망도 갈 수 없이 붙박힌 왕버들, 휘어진 솔가지, 휘늘어진 능수버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 앞에서 나름 몸을 푼다. 그러면서 또한 온몸으로 꿈을 꾸는 버들, 그 앞에 봄은 다시 들어오고 있다. 더 짙어가는 푸르름을 향해서, 더욱 무성할 여름을 향하여, 침묵의 소리도 안으로 더 깊고 크게 만들어 내면서….

<김선길(金善吉) 시인은>

시조시인, 시인, 산림문학회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경북대 행정학박사, 현 경운대학교 교수이다. 저서로는 『산과 숲 나무에 얽힌 고향이야기』 등 9권. 시조작품으로 「향불 마신 관봉 앞에서」 「성밖문 맥문동」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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