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정주 <추천사-춘향이의 말1> 중에서.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의 채색구름은 환상현실이다. 나의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올리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환상현실(Fantasy Reality)에 주목한다. 디지털시대의 예술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빛, 소리, 색, 향기, 맛 등의 오감, 그리고 오감을 연결한 공감각을 활용해,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마음을 몰입하게 하는 환상현실이다. 환상현실은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의 현실이자 동시에 현실의 환상이다. 환상현실이라는 용어는 미뇽 닉슨(Mignon Nixon)이 2008년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의 제목에 사용되었다. 디지털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서 급격히 다양화해 지고 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을 넘어서, 환상현실(FR)이 새로운 문화예술의 주류가 될 것이다.

예술은 환상의 소리, 이미지, 이야기다. 예술가가 만들어낸 현실은 바로 환상현실이다. 예술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창의력으로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다양한 소리, 시각, 언어 등으로 환상현실을 창작해 낸다.

예로 들어,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환상현실의 공간이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은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그린 12,000점의 그림으로 천상의 환상현실로 경험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산사(山寺)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고해(苦海)에서 탈각하여 불상과 불화로 극락을 경험하게 환상현실이다. 작은 한 폭의 산수화는 마음 속 자연이라는 의미의 `흉중구학(胸中邱壑)`으로 실내에서 상상으로 자연을 노닐게 하는 와유의 환상현실이다.

예술가는 정신이 건강하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다.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1911)에서 "예술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이 두 원칙을 화해시킨다. 그는 환상을 다른 사람들이 진정한 현실의 반영이라며 높게 평가하는 새로운 종류의 진실로 바꾸는 재능을 십분 활용해, 환상의 세계에서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감상은 정신건강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 (1930 [1929])에서 "예술이 제공하는 대리 만족은 현실과 대조되는 환상이지만, 공상이 정신생활에서 맡는 역할 덕분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다"라고 예술의 효능을 언급했다. 천재적 예술가가 창작해낸 환상현실은 감상자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아름다운 음악은 온몸에 전달되는 전율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마치 공연장에서 연주를 듣는 것처럼 디지털기기와 오디오로 명곡과 명연주를 들을 수 있다. 시간으로 흘러가는 소리를 녹음으로 담아낸 과학기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천국을 도달한 듯한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 찬 환상현실의 공간은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치유다.

디지털예술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쾌감을 세련되게 승화시켜가기 때문에 환상현실의 표현을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 디지털예술은 지금 여기를 환상현실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적 예술형태다. 예술애호가는 디지털예술로 창작된 새로운 환상현실에서 공감각의 미적 경험으로 삶의 만족을 누리는 축복이 바로 21세기형 예술이다.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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