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왕복 4차선 도로를 매일 건넌다. 둔산동의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는 작업실도 집 맞은편 근린생활 구역의 상가에 있다. 횡단보도 건너서 2분만 걸으면 된다. 200걸음이나 되려나. 그러니 매일 매일 왕복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게 된다. 새벽에 횡단보도 앞에 설 때가 많다. 가로등이 그다지 밝지 않아 컴컴하고 인적은 드물다.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넌다.

비 오는 날엔 특히 조심한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파란 신호에 횡단보도는 건너는 나를 운전자가 보지 못했다. 중앙선을 지났을 때 조그만 승용차의 불빛이 다가왔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순간 느꼈다. 걸음이 멈추고 그대로 얼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태연히, 한 뼘도 안 되게 무릎 앞을 스쳐 지나 유유히 사라졌다. 그 광경을 우연히 지켜본 택시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대신 삿대질을 해줬다. 그날 이후로 더 조심스레 길을 건넌다.

20년을 건너 다닌 횡단보도에는 익숙한 풍경이 여럿 있다. 가끔 이웃과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를 한다. 그냥 길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칠 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십 여 초가 모른 척할 수 없는 서로 알아볼 충분한 시간이 되는 셈이다. 식당, 철물점 사장님과도 마주치고 헬스클럽의 어깨 깡패 아저씨도 만난다.

횡단보도 주변에는 알짜 상점들이 많다. 빵집, 반찬가게, 정육점, 약국, 병원, 핸드폰 대리점들이 모여있다. 횡단보도 주변 가장 가까운 곳에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대파도 사고 고구마도 산다. 어떤날에는 유일한 대화상대가 노점상 아주머니일 때도 있다. 목요일에는 장터가 선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아파트 초입에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떡복이와 순대, 어묵으로 저녁을 해결할 때가 많았는데 지난 목요일에는 반찬가게의 젓갈이 눈에 들어왔다. 흰 쌀밥과 갈치속젓을 데친 양배추에 싸 먹으면 맛이 그만이라는 아주머니 말에 젓갈 한 통을 8,000원 샀다. 양배추 한 통 1,500원. 갈치속젓 양배추쌈에 꽂힌 탓인지 며칠간 뱃속이 부글부글했다.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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