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민중가요의 뿌리는 살인발라드(Murder Ballad)이다. 발라드는 본래 영국과 프랑스 지역에서 기원한 서유럽의 전통민요이다. 그런데 영국의 발라드는 매우 특이하다. 이유는 아직 정확히 분석되지 않았으나 살인발라드 곡들이 엄청난 수를 차지하고 있다.

민중가요의 뿌리인 살인발라드는 무엇인가? 살인발라드는 임의적 용어가 아니다. 영국에서 수 세기 동안 사용해 온 고유명사이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가사가 민중들의 핍박받고 억울하며 슬픈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발라드는 당시 배움이 부족하고 힘 약한 민중들에게 노래의 차원을 넘어서 언론매체의 역할도 했었다.

유럽의 역사를 `피의 목욕탕`에 비유한다. 그 작은 대륙에서 무고한 인명이 무참하게 희생되는 일들이 자주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민중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권력의 폭압으로 시민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퍼뜨렸다. 이렇게 시작된 살인발라드는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 걸쳐 수백 년 동안 온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로 퍼졌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반전 평화운동, 성차별 반대, 인권탄압 반대, 흑백 인종차별 철폐의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 특히 밥 딜런, 존 바애즈와 같은 가수이자 인권운동가들은 청중들과 함께 살인발라드를 부르며 비폭력적 평화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때 존 바애즈가 불러 세계화된 곡이 영국의 살인발라드인 매리 해밀턴(Mary Hamilton)이다. 이 곡은 16세기 스튜어트 왕조에서 왕비의 시중을 들던 매리라는 궁녀의 억울한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궁녀는 궁궐의 최약자이다. 왕은 거리낌 없이 매리를 성폭행하였고, 그녀는 왕의 아이를 배었다. 매리는 불안에 떨다 몰래 아이를 낳았고, 스스로 갓난아기를 살해하였다. 불행히도 이것은 발각되었다. 왕비는 진노하였고, 매리는 시청광장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왕은 사형대 앞에 선 매리에게 다가와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장난을 걸며 우롱한다. 영국인들은 이 곡을 약 오백 년 동안 대대로 불렀다. 그리고 60년대 미국의 시위대가 부르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양희은의 곡 `아름다운 것들`이 바로 살인발라드 매리 해밀턴을 번안한 것이다.

이미 다수의 살인발라드 명곡들이 국내에 번안되어 소개되었다. 조영남의 "내 고향 충청도(원곡: 오하이오 강둑, The Banks of the Ohio)" 및 70년대 방송금지곡이었던 이연실의 `소낙비`가 살인발라드 명곡들이다. 원곡은 모두 폭력과 간계로 죽임을 당한 주인공들의 억울한 사연을 담고 있다. 최근 영화로 크게 히트를 했던 영국의 록 그룹 퀸의 보히미언 랩소디 또한 첫 소절이 살인으로 시작한다. "엄마, 내가 막 한 남자를 죽였어요(Mama, I just killed a man.)." 그 이유는 명확하다. 보히미언 랩소디 또한 바로 영국 특유의 전통민요인 살인발라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록 음악임에도 특히 이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은 발라드풍으로 불러야 하는 것도 이 곡의 특징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소년은 강자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표현한다. 약자(어린 소년)가 강자(성인 남성)를 총으로 쏴 죽인다. 어린 소년은 성인 남성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사회의 인종적, 계급적, 성적 차별과 탄압에 온몸으로 저항한다. 체포된 소년은 공포에 떨고 있다. 사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년은 노래의 맨 마지막 소절에서 말한다. (내가 죽어도) "어쨌든 (변화의) 바람은 분다(Anyway the wind blows.)."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야 말로, 수백 년 동안 민중들이 살인발라드를 부르며, 염원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살인발라드는 현대에 민중가요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노신 호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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