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나의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본 바로는 둘 모두 선천적인 성격과 성향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봐도 나의 내면은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기 전부터 타고난 듯하다. 잘하는 것과 재능은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도 있겠으나 좋아하는 것, 기호는 타고나는 면이 강해 보인다. 아이들이 진로 탐색을 할 때 `이건 나와 맞아` 또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처럼 결론 짓는 걸 본다. 나도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을 `과학자`라고 말했고 과학의 많은 분야 중에 우주와 하늘을 좋아했다.

요즘엔 조금 바뀐 듯도 하지만 내가 진로를 선택할 때는 천문학을 전공하면 밥을 굶는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그래서 순수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좋게 보면 의지가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세다. 많은 경우 부모를 이겨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천문학과의 정원이 많지 않은 데도 1·2·3지망을 모두 천문학과로 쓰고 입학한 이들이 꽤 있었다. 결국 천문학자가 된 지금은 부러움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밥벌이도 하니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로지도 강연을 하면 전망과 보수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나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해 준다.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종이 신문 구독을 추천한다. 신문을 넘기며 제목과 사진만 훑어봐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눈길이 가고 자주 언급하는 분야가 보인다면 관심과 흥미가 있다는 뜻이다. 어느 분야이건 성공하는 이도 있고 실패하는 이도 있으며, 요즘엔 어디나 경쟁이 존재한다. 전망이 밝고 재능까지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행복할 수 없고 오래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정말 가고 싶은 길이라면 힘들어도 참을 수 있고 고되더라도 버틸 수 있다.

천문학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밤하늘을 통해 맞닥뜨린 우주의 아름다움이었다. 구름 없이 맑은 날, 시골에서 또는 도시에서라도 가로등이나 불빛이 없는 곳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빈 공간이 안 보일 만큼 가득 들어찬 별들! 별들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공간에 빠져들고 우주의 광막함이 나를 압도할 즈음엔 공포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그 광활한 우주조차도 실험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별자리 책을 펼치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북극성부터 밝은 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하늘을 알게 되면 마음속에 뿌듯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망원경과 사진기가 있다면 또 다른 심오한 세계를 맛볼 수 있지만, 천문 관측을 취미로 할 때의 장점은 맨눈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봄철 초저녁에 북쪽 하늘을 보면 큰곰자리의 일부인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불빛이 많고 공해가 일상인 도시에서는 어두운 별들이 안 보이기에 오히려 쉽게 찾을 수 있다. 별자리를 하나도 모른다면 북두칠성 정도는 이웃집 할머니가 알려 주실 수도 있다. 무엇이든 하나만 찾게 되면 별자리 책을 보며 그 옆의 다른 별자리로 확장할 수 있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책 대신 별자리 지도를 검색해도 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아마추어 천문가가 된 것이다.

하늘을 본 적 없거나 하늘의 경이로움을 느낀 적 없는 아이들이 천문학을 전공하는 시대이고, 우주, 숲, 동물과 식물, 바다, 지질 등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입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다. 그러나 우주 속에서 `나`를 찾고, 내 세상을 넓히는 방법은 현실에 붙박혀 있는 눈을 들어 다른 세상을 맛보는 데서 시작한다.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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