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병동 파트장
이지은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병동 파트장
어느새 봄이 왔다. 코로나 덕분에 여느 겨울보다 더 혹독한 겨울이었지만 봄은 왔다. 병원 앞 꽃망울들은 봄이 왔음을 늘 먼저 알려주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한동안 봄만 되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했던 노래였는데, 올봄에는 유독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주말만 되면 우울한 날씨와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미세먼지에 둘러싸여서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 시대 후 두 번째 맞는 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3월은 이렇게 지나가고 어느덧 4월을 맞았다.

서른 즈음 친구들과 떠났던 오사카 여행을 종종 추억하곤 한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인생길을 앞두고 그저 웃고 즐겼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기대하며 내 인생에도 봄날이 언젠간 오겠지 했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보내고 인생의 절반이나 살았을까 싶지만, 똑같이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드는 생각은 달라졌다. 설레는 마음은 같지만 그 무엇인가 나에게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마음은 줄어들었다. 그 무언가에는 우리의 희망 내지 욕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대단한 사건의 연속은 아닌 것 같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을 이룬다. 하루를 충실히 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므로 내 인생이 조금씩 완성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어느 순간 잭팟을 터트리는 날이 아닌, 성실한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이루어짐을 말이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나며 정신없이 십여 년이 지나갔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병원 업무와 육아 속에서 지치기도 했지만, 뒤돌아보면 내 인생길에 많은 것들이 쌓여있었다. 행복했던 날, 지워버리고 싶은 날,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날들도 있다. 그러한 날들이 켜켜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매 순간 분초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열 번째 봄이다. 이 아이들과 건강하게 꽃잎을 만져봄에 감사하며 나의 설레는 마음을 얘기해 주고 싶다.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제약이 있는 지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길을 멈출 수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현재가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한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에 봄으로 찾아올 것이다.

벚꽃 인파를 막기 위해 주말 동안 여의나루역 무정차를 계획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싶다. 내년 봄에는 코로나로 웅크려 있던 우리들의 마음도 기지개를 켜며 자유롭게 벚꽃 구경 가기를 소망한다.

이지은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병동 파트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