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철 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
강문철 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얘, 너 직업이 뭐니?" 아침이슬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국민가수 반열에 오른 양희은 씨가 후배들을 만나면 이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고 한다. 중견가수로서 후배들에게 다가가는 그 분만의 소통방법이라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얘, 너 직업이 뭐니?" 라고 물으면 나는 당연히 "건축사" 라고 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사, 설계사, 건축설계사가 다 올바른 명칭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나의 직업은 그 무엇도 아닌 `건축사`다. 그런데 올바른 명칭을 사용해야 하는 공영방송에서조차 건축설계사, 설계사 등으로 잘못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 때마다 시정요청을 해도 그 때 뿐이다.

건축사는 건축물을 기획할 때는 기획자고, 구체적인 설계를 할 때는 설계자고, 공사현장에서 도면대로 시공되는지를 살필 때는 감리자다. 건축과정에서 분쟁으로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 판사에게 조언을 담당하는 조정위원의 역할도 하고, 공무원을 대신해 현장조사업무를 할 때는 업무대행자가 된다. 이렇게 수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건축사에게 설계라는 지엽적인 업무로만 국한시키는 명칭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20여 년 전 아름다운 도시 아산에 이주해 살고 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고 따뜻해진 날씨에 점심식사 후 온천천을 따라 30-40분정도 산책을 한다. 유아차를 끌고 하천을 거닐며 운동하는 새댁도 있고, 점심시간에 여유롭게 산책하는 직장인도 보이고,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하시는 어르신들도 보인다. 온천천은 졸졸졸 흐르고, 그 속에는 송사리가 떼지어 헤엄친다. 잉어무리는 이곳저곳을 유유자적 노닐고 있고 청둥오리들이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한다. 새끼 청둥오리가 엄마를 따라 헤엄치며 물속을 들락거린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이렇게 멋진 도시 아산도 명칭 때문에 아픔을 겪었다.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되면서 새로운 도시의 명칭을 정할 때 발생했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온양온천의 향수를 생각하면 당연히 온양시로 통합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아산시로 개명됐다. 아산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초반 지인들과 통화에서 아산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아산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연설명을 해야 했다. "옛날 온양온천, 현충사가 있는 곳!" 그제서야 "아 온양" 이렇게 반응한다. 몇 차례 이런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나도 진화했다. 어디 사냐고 물으면 그냥 온양이라고 답한다. 대부분 곧바로 `온양온천!` 이렇게 반응한다. 시·군 통합 당시 잘못된 명칭 선택 때문에 온양온천이라는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소멸했다.

그 때의 여파인지 모를 속 터지는 일이 또 발생했다. 2004년 아산 땅 95%, 천안 땅 5% 위에 세워진 KTX 역명을 결정할 때 아산과 천안은 심각하게 대립했다. 아산시내 위치한 기차역명은 온양온천역이므로 아산시민들은 새로운 KTX역명을 아산역으로 명명해 줄 것을 주장했다. 천안은 반대했다. 치열한 현수막 싸움이 계속됐다. 지금도 기억하는 현수막 문구가 있다. `아버지는 김 씨인데 자녀는 이 씨라고 해야 되나요?` 웃픈 일이었다. 결국 KTX역명은 `천안아산역`으로 확정된다. 전국에서 유래 없는 짬뽕역명이 탄생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라고 노래했다. 아산이 통합시 명칭을 잘못 정해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소멸했던 것처럼 잘못된 명칭 사용으로 건축사들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건축설계사, 설계사가 아닌 `건축사`로 제대로 불리우고 싶다. 그리하여 건축사에 맞은 빛깔과 향기를 내고 싶다. 그렇게 시민의 안전과 평안을 지키고 싶다. 우리들 건축사의 작품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꽃이 되고 싶다.

강문철 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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