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가 또 쓰러졌다.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지난 1월 1차 합의안을 이끌어냈지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인 이 씨(59)가 뇌출혈로 의식불명에 빠졌다. 이 씨 뿐 아니라 택배기사들은 대개 하루 12시간 안팎 쉴 틈 없이 200-300개에 이르는 물품을 날라야 한다. 올해 택배기사의 사망이 벌써 5건에 이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비극적인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여건이다.

택배기사들이 1건을 배송하고 쥐는 금액은 단돈 500여원. 국내 택배 시장은 택배본사·대리점·택비기사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로 이뤄졌다. 택배사가 지역 대리점에 물량을 위탁하고, 대리점은 개인사업자인 기사에게 재위탁하는 형태다. 그렇다고 해서 택배사가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임차료와 터미널 운영비 등 고정 비용을 빼면 남는 돈은 1건당 70원 수준. 이에 따라 최근 주요 택배3사가 택배단가 인상을 결정했다. 택배기사 과로 방지를 위해 분류 투입과 시설 자동화 등 근로환경 개선 비용 부담 증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택배비용 인상에 앞서 불공정 관행과 수익구조 개선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택배비용 현실화보다 수수료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 수익분배 구조상 택배비용을 소폭 올린다고 해도 인상된 가격만큼 택배기사에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서는 수익구조 개선에 대한 고민을 찾을 수 없었다. 새벽 배송 금지, 주 5일제 도입 등 근로시간 단축 관련 내용이 우선적으로 권고됐을 뿐, 실질적인 대책은 사회적 협의체의 과제로 넘겼다.

가격 인상이 당장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근본 해답은 아니다. 그간 굳어진 택배산업의 구조적 폐해가 택배기사를 사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미 새벽배송과 총알배송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그 기저엔 택배기사들의 값싼 노동력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소비자, 택배사 등 모두가 손해를 감수해야 죽음을 달리는 택배기사들을 구할 수 있다. 김하영 편집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하영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