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지역·세대간 갈등 망국병 수준
'적폐'·편가르기 극한 대립 부추겨
중용의 충청 정서 국정철학 삼아야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국회 국민통합위원회가 이달 초 국회도서관에 등록된 전문가 18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를 내놨다. 응답자 100명 중 90명인 89%가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이는 1.4%로 10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해진 주 원인에 대해선 `정치`라는 응답자가 63.1%에 달했다.

여야를 떠나 각 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 민주당 차기 당권주자인 홍영표 의원은 충청권 언론과의 대담에서 "작금의 정치는 국민들을 통합시켜 안정을 이루는 게 아니라, 갈등과 대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국민의힘 최다선인 정진석 의원도 대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망국적인 고질병이 돼 버렸다"고 진단하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선 충청대망론이 국민 대통합과 화합의 새 역사를 손짓하는 역사적 담론이 돼야 한다고 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민주화가 발달할수록 `다름`은 커질 수 밖에 없고, 지역과 진영, 계급간 대립은 어쩌면 불가피한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대립구도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게 문제다. `태극기 부대`나 `친북 좌파`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동일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한(?) 차이가 중오나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돼선 안되는 것이다. 진영대결만이 위험수위를 넘은 게 아니다. 가진 자의 노력에 대한 존중은 사라진 지 오래고, 없는 자에 대한 자발적인 배려와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심지어 연령과 직업에 있어서도 `다름`은 공격의 이유가 돼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임기를 1년여 남겨놓은 현 시점에서 그 약속은 공염불이 돼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년 내내 `적폐 청산`을 강조하다 보니, `적폐`가 아닌 `다름`까지도 진영논리가 작동해 수시로 논란을 빚었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이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전보다 극한적 대립은 오히려 심화됐다.

대선을 1년 여 앞둔 정가에서 충청대망론이 주목받는 근본적 이유는 이러한 극한적 대립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지, 소지역주의가 아니다. 이념과 사상면에서 비교적 중도와 중용을 존중해온 충청의 정서가 국정철학에 녹아들어야 협치가 가능하고,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하는 과정에 충청에서 유독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부친의 고향이 충남이라는 것만으로 지역연고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극단적 대립구도를 고착화시킨 문재인 정부의 대척점에 그가 있기에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청을 중심으로 한 중도층에게 호감을 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검사출신은 `협치`보다 `정의`라는 키워드가 어울릴 것이라는 게 일반론일텐데, 윤 전 총장은 의외로 `국민통합`을 강조할 태세다. 총장직 사퇴 후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전한 대화내용의 첫 화두가 `편가르기를 하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아직까지 윤 전 총장이 충청대망론에 적합한 주자인지 검증되지 않았다. 나아가 지역연고가 없는 누구라도 충청 정서와 궤를 같이 한다면 충청대망론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상록`의 저자인 몽테뉴는 저서에서 "온갖 의견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 반대되는 판단은 나를 분개시키지도, 흥분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눈 뜨게 하고 단련시킬 뿐이다"라고 했다. 이 나라를 이끌겠다는 리더라면 `부드러운 눈길`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귀에 거슬리는 의견까지 경청할줄 알고, 반대되는 판단에 흥분하지 말야야 할 것이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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