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민 환경부 갈등조정팀장
오영민 환경부 갈등조정팀장
플라스틱과 나일론은 석유에서 뽑아낸 20세기 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발명품이다. 나일론은 섬유계 여왕으로, 플라스틱은 산업계의 황제로 인류가 만들어낸 석유계 합성소재의 대표 지위를 누렸다. 미국의 듀폰사의 화학자 캐러더스는 1935년 실크를 대체할 섬유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나일론66을 발명하게 된다. 이 후 듀폰사가 나일론이라는 상표로 가늘고 질긴 스타킹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실크보다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질기기까지 해 나일론 스타킹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방탄조끼, 낙하산, 밧줄 등 군사용품 제작에 나일론이 쓰이면서, 나일론 스타킹 품귀현상까지 발생했다. 플라스틱은 코끼리 상아의 대체품을 찾다가 발명됐다. 19세기 귀족들이 취미생활로 당구를 즐겼는데 당구공을 코끼리 상아로 만들 자니 너무 귀하고 비쌌던 것이다.

플라스틱은 한 순간 짠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화학의 한 장을 차지할 만큼 오랜 기간 여러 종류로 진화했다. 크리스티안 쇤바인이 폭발성이 강하고 탄성이 큰 질산섬유소 합성에 성공한 이래, 영국의 알렉산더 파크스가 이를 활용한 파크신이라는 물질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이후 베이클랜드가 천연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최초의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를 만든다. 그 뒤로도 여러 화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다양한 성질의 플라스틱이 개발됐다. 현재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이 폴리에틸렌, 폴리에틸렌 테레프타레이트, 폴리프로필렌, 폴리염화비닐 등 조금씩 성질이 다른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모두 플라스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서로 족보가 조금씩 다른 물질들인 것이다.

오늘날 석유화학 기업들은 새로운 형태의 플라스틱 진화에 힘쓰고 있다. 그동안 플라스틱 족보에서 찾기 힘들던 썩는 플라스틱, 접는 플라스틱, 전기 통하는 플라스틱 등 지구와 인류사에 새로운 장을 차지하게 될 신소재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이제는 시장가치 뿐 아니라 환경가치까지 뛰어난 소재를 개발해야 하기에 지금부터 숙제가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새로운 플라스틱 개발에 힘쓰는 이유는 단순히 지구를 위한 착한 소재를 만들기 위한 선행이 아니다. 친환경 플라스틱의 시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마켓앤드마켓은 그 규모가 2020년 11조 8500억 원에서 2024년까지 31조 5000억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들이 한 번 쓰고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지구별에 유기하는 20세기 플라스틱이 아닌 22세기 플라스틱을 요구하고 있는 덕이다.

실크와 상아와 같이 천연 물질을 사용하고 애초에 인공적 합성물질을 만들어 내는 양을 줄이는 것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익숙해진 물건을 그만 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과 생활 곳곳에 쓰이는 이런 소재를 천연 물질이 완전히 대체하기도 어렵고, 대체한다 해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기까지 마냥 기다리기보다 하나씩 할 수 있는 것 들을 해나간다면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예컨대 단일소재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생수병 하나도 두 세 개 이상의 성질이 다른 플라스틱으로 생산되기에 재활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기술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지만, 돈도 많이 들고 품질도 낮은 플라스틱이 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활성화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 기업들이 라벨 없는 생수를 생산하는데 앞장서고, 플라스틱 포장재 감량에 고심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환경을 나중에 생각하는 시대에서 더불어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소재경쟁이 기대되는 이유다.

오영민 환경부 갈등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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