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진 대전시 자치분권국장
임재진 대전시 자치분권국장
1960년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분수령이 된 해다. 광복 이후 계속된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 해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치르며 자유당 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부정선거를 서슴지 않았고, 결국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의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 정권 비호세력인 반공청년단이 습격하자, 4월 19일 3만여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의 발포에 당일 서울에서만 130여 명이 죽고, 1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를 발표했다.

여기까지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4·19혁명의 내용이다. 기념할 만한 국민의 역사다. 다만, 아쉬운 점은 4·19혁명이 우리 헌정사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4·19혁명의 촉매제로서 대폭발에 앞선 민주화 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3·8민주의거도 그 중 하나다.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대구 2·28민주운동 소식이 대전에 전해지자 그 해 3월 8일 지역 학생들은 학교 담을 넘어 거리로 나와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이후 경찰이 학생대표 24명을 연행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4월 26일까지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독재에 항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친 3·8민주의거는 마산 3·15의거를 거쳐 4·19혁명까지 이어졌다.

4·19혁명의 촉매제가 된 3·8민주의거, 결국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11월 2일 충청권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3·8민주의거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도, 이를 시민들과 공유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반성할 만한 일이다.

이에 대전시는 제61주년 3·8민주의거 기념식을 앞둔 지난 3월 4일 3대 전략, 8개 핵심과제, 19개 세부과제로 구성된 `3·8민주의거 정신 계승·발전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과제 구성에서부터 3·8민주의거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8민주의거를 대전의 시민정신으로`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먼저, 3·8민주의거 아카이브 구축, 국내외 학술세미나 개최, 3·8민주의거 기념관 건립을 통해 3·8민주의거의 역사적 사실과 밑바탕이 된 정신을 정립하게 된다.

또한, 3·8민주의거 기념식과 3·8민주의거 거리 조성을 통해 시민들에게 3·8민주의거를 알리고, 다양한 시민참여 공모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3·8민주의거 정신에 공감할 수 있는 정책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3·8민주의거 정신이 미래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역사적 사실을 초중등 교과서에 수록하고, 전국 민주의거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제작과 단체 연대를 통해 3·8민주의거 정신과 가치를 전국에 알려나가는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3·8민주의거가 일어난 지 6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실현 과정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가치에 비하면 대전시가 마련한 정책들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이라도 3·8민주의거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시민, 더 나아가 전국에 알리는 계획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4·19혁명이 갖는 위상은 국민 대부분이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대는 4·19혁명이 부패한 정부를 심판했다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하고 부패와 불의에 항거했다는 정신적 가치에도 있지 않을까.

3·8민주의거 역시 4·19혁명과 똑같은 정신적 가치의 발현이었고, 이러한 시민들의 정신적 연대는 80년대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현재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다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향후 대전시는 기본계획을 착실히 추진하고 보완해 가면서 3·8민주의거를 대전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 임재진 대전시 자치분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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