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섭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황재섭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재택근무 후 오랜만에 연습실서 마주친 단원들의 얼굴은 검고 흰 마스크에 갇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무용수의 컨디션은 몸의 움직임으로 좋고 나쁨을 인지해야 한다. 뛰고 구르며 달리는, 그냥 움직여도 힘든 동작들을 장시간 두터운 마스크를 끼고 연습한다. 힘겨운 호흡으로 펄럭이는 마스크는 마치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와 춤추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숨이차고 얼굴이 빨개져도 마스크를 벗으라거나 연습을 대충하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또한 이들의 본분이기에 연습실의 무용수는 마스크와 상관없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춤 언어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이상의 것들을 찾아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마스크 뒤 호흡으로 상기된 붉게 물들다 못해 누렇게 침착된 피부색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호흡이라는 일차적인 생존행위로 인해 집중력을 잃어가는 표정과 동작들도 위태로워 보인다. 초라한 육신을 통해 찰나에서 영원을 보아야 하는 춤에서 육신이 자유롭지 못하니 그 이상의 기대는 힘들다. 해야 하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지만,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 무슨 예술인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필자의 역할은 작품의 안무가이자 무용단을 이끄는 운영자이기도 해서 단원들의 역량을 최고로 끌어내는 역할도 있지만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 예술감독의 역할이 약간은 상충되고 있는 것이다. 마스크 하나로 연습이 생존투쟁으로 바뀐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야 하는 안무자도 고역이다. 필자는 사실 백수처럼 놀고먹고 뒹굴 때 작품의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시간 속에 엉켜있던 모든 일들을 비워내면 바쁠 땐 보이지 않던 시대의 흐름과 정신이 멈춰진 듯 세분화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삶을 관찰하면,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특별하게 마주보게 된다. 일반적인 실체를 넘어보는 혜안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그만큼의 공부는 필수이지만. 그런데 지난해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놀고먹는 것도 집에서만 해야 했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한 만남도 자제했다.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몸은 자유롭기에 사고도 유연해질 줄 알았다. 번뜩이는 영감으로 대본노트를 빼곡히 채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주변의 일상을 낯설어 했고, 그냥 바라보아도 될 어떤 평범한 것들을 내 눈은 불신으로 걸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강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을 스스로 구속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인간적인 두려움이 스스로를 강하게 통제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구속받을 때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과는 결이 다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롭지 않은 자유로운 상황이다. 작품을 위한 사색의 시간도 평범한 일상일 때 더 효율적인가 보다.

마스크에 갇힌 얼굴은 말을 잃게 했고, 짧은 호흡은 몸을 움츠리게 했다. 온갖 매체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가지 말아야 할 곳들로 종일 죽음과 현실을 넘나든다. 저 멀리 타국의 민주화 운동의 군상들 얼굴 위에도 마스크는 존재한다. 우리와 같은 마스크 얼굴들이지만 팔뚝에 선명한 혈액형 표시는 그들의 마스크가 생존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임을 알게 한다. 코로나의 위험과는 다른 절실함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연상케 하는 시위모습에서 지금 우리를 돌아본다.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 사회는 과연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는가?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상관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세속적 물신주의를 경계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인간애가 요구된다. 어려운 때이다. 이제 세상은 예전과 다르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검열해야 하는 생소한 경험을 하게 했다. 언제든 알 수 없는 공포로 미래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자유롭지만 아름다운 구속이 필요한 요즘이다. 황재섭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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