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지 1년 남짓 지났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코로나19는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전 세계적인 치료제 및 백신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또다시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대규모 사망자 발생뿐만 아니라 인류의 습관과 행동,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뉴노멀`의 시대로 전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마스크 착용과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고 있으며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사회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치료제는 미 FDA가 승인한 렘데시비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건부 수입허가 품목으로 지정돼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신약으로는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 GC녹십자의 혈장치료제가 식약처 승인을 받았으며, 기존 약물의 용도를 변경하는 약물재창출 방식으로 코로나 치료제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백신의 경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존슨 등에서 개발된 백신이 미 FDA 승인을 받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보고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 예방 문제와 미래에 닥쳐올 또다른 코로나 팬데믹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국내에서도 백신 개발을 끝까지 마무리하여 자체 백신 제품 및 플랫폼 기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화학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진단·백신·치료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이전해 초기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축적된 신약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및 사스 바이러스 등 범용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으면서 렘데시비르와는 차별화된 작용기전을 가진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해 국내기업에 기술이전했다. 코로나 백신 분야에서도 HK이노엔과 함께 임상후보물질을 성공적으로 발굴하고 올 상반기 임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코로나 외에도 미래 또다른 미지의 신변종 바이러스 대유행을 대비해, 초고속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전문화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으며, 진단 및 백신 분야에서도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차세대 플랫폼 기술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과 치료제 보급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이것이 팬데믹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감염병 전쟁의 시작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로 사스(2003년), 신종 인플루엔자(2009년), 메르스(2015년), 코로나19(2020년) 등 감염병의 대유행 빈도가 증가하고 빠르게 변이하고 있어 신변종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메르스 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는 한국화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신변종 감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CEVI 융합연구단을 발족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또 발생할 수 있는 미지의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몰형 연구가 아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대규모 투자를 통한 선제적 연구개발이 필수적이다. 백신과 치료제는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고 경제성이 떨어지며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영역에서는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가 중요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미지의 감염병에 맞서 인류의 생존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향후 지속적으로 정부를 중심으로 한 산학연병 간의 긴밀한 K-감염병 대응 체계를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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