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최근 체육계와 연예계의 학교폭력(학폭) 미투, 이른바 `폭투` 논란이 뜨겁다. 사실 학교폭력은 전 세계 국가의 공통적인 관심사이면서 오래된 사회 문제다. 왜 유독 청소년 시기 공격성과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일까? 비밀은 뇌과학에 있다.

뇌는 일반적으로 뒤에서 앞으로 자란다.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원시적인 뇌,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인 변연계가 청소년 시기에 발달한다. 변연계에는 아몬드 크기만 한 시상하부와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와 편도가 있다. 반면 앞쪽에 있는 전두엽은 가장 늦게 발달한다. 그중에서도 전전두엽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부위로서, 운동 중추를 통제하고 집중과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자기 억제와 같은 고도의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폭력성은 시상하부가 자극되거나 전전두엽이 망가질 때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돼 있다. 경쟁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은 십대의 청소년 시기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는 뇌의 시상하부와 편도체를 자극한다. 그러면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폭력성이 발달한다. 즉, 폭력적 성향이 준비된다. 이런 폭력 충동의 제어 장치 역할은 뇌의 전전두엽이 담당한다. 뇌의 가장 바깥 영역인 전전두엽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고 인간의 이성을 지켜주고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의 전두엽은 아직 완공이 덜 된 리모델링 중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판단을 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예측해 계획하는 일 등에 미숙할 뿐만 아니라 작은 충동에도 공격성을 나타내기 쉽다. 이런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공격적 충동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폭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점점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해진다. 그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던 야성적 시대가 아닌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학폭은 안 된다. 한번 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폭력의 기억과 괴로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당한 사람의 마음속 상처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폭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약물남용, 자해 및 자살 시도 등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건강상의 피해를 겪는다. 이는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신체의 반응에 해당한다. 학폭은 학교생활 동안 장기간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에 노출된다. 그 결과 기억, 인지, 수면, 식욕 및 기타 기능에 항상 비상 경고등이 켜진 상태로 유지가 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한 뇌신경세포의 손상과 이로 인한 학습 능력 저하는 필연적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만성 폭력에 노출되면 유전자 기능에 영향을 주어 몸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의 이런 신체적인 변화는 나중에 성인이 된 후 우울증을 포함한 감정 장애와 자율신경의 변화로 인한 당뇨,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몇 년 전 영국의 연구진은 만성 괴롭힘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뇌 스캔을 통해서 뇌의 학습 능력과 운동 영역을 담당하는 특정 영역이 쪼그라드는 구조적인 변화를 보고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는 학폭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학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분하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한다. 말로 하는 폭력도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폭력에 무감각하고, 어쩌면 많은 우리들 자신이 이런 폭력에 물들어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또는 무감각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학폭 가해자는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야만 한다. 이 폐해를 제대로 알고 이에 대한 확실한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학폭을 아이들만의 일탈로 치부할 것인가?

오한진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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