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석 목원대 교수
원은석 목원대 교수
소위 `대학폭시대`가 화제다. `대학폭시대`는 최근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는 유명인이 과거에 저질렀던 학교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폭로를 일컫는 인터넷 용어인데, 지목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사태의 발단은 한 자매 운동선수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자매는 둘 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 있었고 예능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소속 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선수에게 괴롭힘을 당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렸고 사건은 자매가 지목한 가해자에게 화살이 쏟아지는 대신 오히려 학창 시절 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개됐다. 결국 소속팀은 두 사람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고 국가대표 자격 역시 무기한 박탈됐으며, 출연했던 모든 방송에서 퇴출당했고, 광고 또한 삭제됐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유명 걸그룹 멤버를 비롯해 최근 인기를 얻기 시작한 배우들, 그리고 다른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에게로 불길은 번져나갔고, 구설에 오른 대상 중 상당수가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활동 중단하게 됐다. 이전에도 과거의 행실이 문제가 돼 활동을 중단한 유명인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연일 지속되고 있는 `대학폭시대`는 지목된 대상의 수와 화력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사가 다뤄주지 않는 이상 주목받기 어려웠던 예전과는 달리,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 블로그 및 유튜브(Youtube)와 같은 대중화된 마이크로미디어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등 다수의 채널을 통해 동시에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부정확한 메시지가 함께 전달된다는 단점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메시지가 사실일 경우, 다른 피해자들이 함께 가세해 메시지를 강화해 주면서 파급력이 강해지는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유명인들이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조용히 묻힐 가능성보단 저격당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현상은 과거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지탄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는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지속해 온 유명인들의 사례도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세계적인 선수는 `파도파도 미담`이라는 유행어로 설명될 정도로 과거의 좋은 행실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터져 나와 대중들의 지지를 더욱더 굳세게 만든 반면, 정작 피해자라 주장하던 자매는 연이어 뒤따르는 다수의 피해 사례로 인해 결국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미담은 평소에 그 위력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위기의 상황을 맞닥트리면 올라서서 버틸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대학폭시대`를 통해 알 수 있다. 인성이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보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준 것이다.

사람들이 선(善)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s)`으로 원래 인간은 공정성과 협력을 지향한다고 바라보는 관점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이기적 인간(homo economicus)`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한다고 설명하는 관점이다. 특별한 이유나 보상이 없어도 좋은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기는 하나,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기질과 본성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공공선이 발동되는 특별한 상황을 겪어보기 전에는 `호혜적 인간`이 주는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특히 `대학폭시대` 사건의 일어난 주요 시점인 청소년 시기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일상에서도 `이익`과 `선한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다양한 양상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때 이익을 포기하고 스스로 선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선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폭시대` 사례는 스스로 선한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경우, 향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선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원은석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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