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면회객이 일회용 가운·고글 등 갖춘 채 가능
준비 미흡으로 실효성 의문…관련 예산 등 대책 없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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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요양병원·시설에서 조건부 접촉 면회를 허용한 데 대해 지역 의료계 일각에서 현장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접촉면회 용품인 일회용 가운과 고글 등을 면회객이 직접 준비하기 어려울 뿐더러 병원·시설에서도 마련할 예산과 시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 보건당국에 따르면 9일부터 전국 요양병원·시설에서 조건부 접촉 면회가 허용됐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5일 마련한 코로나19 확산 이후 장기간 제한됐던 요양병원·시설 환자와 보호자 간 면회 문제 해결을 위해 `요양병원·시설 면회기준 개선 방안 지침`에 따른 후속 조치다.

그동안 요양병원·시설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비접촉 면회가 가능했으나, 사실상 집단감염 발생 등을 우려해 자체적으로 면회를 금지·제한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나 중증환자, 주치의가 면회 필요성을 인정한 환자 등에 한해서 접촉 면회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다만, 면회를 원하는 보호자나 손님 등은 면회일로부터 24시간 이내 실시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며, KF94·N95 마스크, 일회용 방수성 긴팔 가운과 일회용 장갑, 고글 등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고 1인실 또는 별도의 독립 공간에서 환자를 만나야 하는 조건부 허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침에 요양병원·시설 현장에서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면회객이 개인 보호구 등을 완벽하게 구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또한, 미처 보호구를 준비하지 못한 면회객을 위해 병원·시설 측에서 물품을 제공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예산이나 인력 지원 등 대책이 전무한 게 현실이다.

대전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면회객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는데, 해당 용품을 자체적으로 구비할 여건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병원)내부에서는 보호구를 완벽 착용하고 오는 면회객보다 맨몸으로 와서 (보호구를) 요구하는 면회객이 더 많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럼 결국 병원 측에서 물품 구비 등을 부담하게 돼야 할텐데, 그 예산과 인력은 누가 해결해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게다가, 나이가 많은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는 고글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면회객을 인지하기 쉽지 않은 만큼 과연 제대로 된 면회일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얼굴을 보기 위해 잠시라도 보호구를 벗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요양병원 관계자는 "어르신들은 고글에 마스크까지 쓴 면회객을 보고 놀랄 것"이라며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자기 딸인지, 아들인지 구별할 수 있겠나. 결국 마스크라도 벗고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와병환자는 호흡기 때문에 면회실로 이동할 수 없는 것도 한계"라고 귀뜸했다.

이밖에, 면회가 끝난 뒤 일회용 가운과 고글 등에 대한 처리도 문제다. 별다른 지침이 없어 일반 쓰레기처럼 취급해야 할지 아니면 재활용 해야 할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지역 방역당국은 이번 접촉 면회 지침과 관련해 요양병원·시설을 대상으로 병상 수 등을 포함한 수요조사를 진행해 면회 용품 지원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장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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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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