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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이즘의 몰락 두번째

2021-03-09 기사
편집 2021-03-09 07: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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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지난 시간엔 '이즘'의 유행과 몰락을 전반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퓨쳐리즘, 큐비즘, 다다이즘, 등등 수많은 '이즘'들이 특히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했던 것은 어쩌면 그 시대가 열정의 시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한 수많은 '이즘'들은 사라지고 결국 역사책에 남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그것들은 어쩌면 한낱 '잊음'이 돼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 '이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즉, 로맨티시시즘(Romanticism)에 대해 알아보자.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이것은 무슨 독일 낭만주의 문호의 시가 아니다. 알다시피 가수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라는 가요의 가사 중 일부다. 이 가사에 나타난 것처럼 일반적으로 우리는 굉장히 다양하고 포괄적인 '낭만'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Romanticism에서 낭만의 의미는 좀더 심각하다. 일단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즉 고전주의가 말하는 형식의 엄격함과 조화와 균형, 그리고 과학과 이성에 반해 낭만주의 자들은 형식의 자유로움과 감성과 개성을 존중했다. 더 나아가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낭만주의는 최초의 현대 혹은 현대주의(Modernsm)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에 있어 대표적인 낭만주의적 작곡가들을 열거해 보면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브람스, 바그너, 쉬트라우스 말러 등이다. 물론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연결하는 일종의 구원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베를리오즈와 쇼팽을 제외하면 모두 독일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이들의 작품이 발산하는 감성의 깊이는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이 또한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엄격한 형식의 음악보단 자유롭고 묘사적인 음악들이었다.

고전주의 음악시대엔 엄격한 형식미가 종종 창작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한 영역의 음악을 보다 '절대음악'이라고 불렀고 교향곡, 소나타 같은 형태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고전음악 시대엔 교향곡과 소나타가 가히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낭만주의 음악시대로 들어가면 교향곡의 발표는 현저히 떨어진다. 대신 교향곡을 보다 묘사적이고 표현적으로 바꾼 '교향시'가 나타나며 뭔가를 표현하면 스토리를 들려주는 소위 '표제음악'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전 음악시대엔 작품의 제목이 보통 '교향곡 5번 다단조' 아니면 '피아노 소나타 2번 다장조' 이런 식이 많다. 그러나 낭만주의 음악시대엔 '핑갈의 동굴', '환상 교향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처녀', '겨울 나그네'처럼 무엇인가 스토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낭만주의자들은 형식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 속에 들끓는 감정의 물결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광기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영웅심에 불타기도 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반듯하고 조화로운 대리석 조각품이기보단 비오는 날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한다발의 꽃송이들이였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우는 처절한 절규이기도 했다. 폭풍우치는 한밤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밤에 허깨비처럼 돌아다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 광인이기도 했다.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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