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묵 충남대 철학과 교수
최정묵 충남대 철학과 교수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수지적야불후즉부대주야무력 : 水之積也不厚則負大舟也無力)"

이 글은 `장자, 소요유`편에 나와 있는 것이다. 물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고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논어에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는 말이 있다. 여기서 물은 지혜와 지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역`에서 어려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괘들이 물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면, 물은 고난과 장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수뢰준(水雷屯)괘는 일을 시작했으나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아 생긴 어려움과 관련된다. 또한 사물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여 아직 크게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을 상징한다. 택수곤(澤水困)괘는 자신의 역량 부족 등 내적 한계 때문에 생긴 어려움을 나타난다. 자연적인 형상으로 보면 연못에서 물이 빠져나간 모습이다. 수산건(水山蹇)괘는 외부적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모습이다. 위험을 보고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지혜를 지녀야 하는 상황이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지만, 두려움과 어려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맑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큰물인 임수(壬水)는 나무를 잘 기를 수 없는데, 이것이 나무를 기르는데 이용되려면 흙이 필요하다. 그런데 토(土)는 오행의 상생, 상극의 관계로 보면, 토극수(土剋水)로 물을 극하는 것이다. 물을 공격하는 흙이 있어야 물의 쓰임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역경은 바로 이러한 물에 대한 흙과 같은 것이다. 난관에 봉착하였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게 됨으로써 지혜가 밝아지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상이나 철학은 존재하기 어렵다. 어려움에 처해 본 사람만이 잠재된 지혜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고난이 지혜와 용기를 발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 어려움을 상징하는 괘들은 형통할 수 있다고 풀이하는 것이다.

고난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임을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려주시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뼈와 근육을 힘들게 하며, 몸과 살을 주리게 하고 몸을 가난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것을 힘들게 만드나니, 마음을 움직이고 본성을 참아내어 하지 못하는 바를 더욱 힘쓰게 하기 위함이다.(천장강대임어시인야天將降大任於是人也신댄, 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하고 노기근골勞其筋骨하며, 아기체부餓其體膚하고 공핍기신空乏其身하야 행불난기소위行拂亂其所爲하나니, 소이동심인성所以動心忍性하야 증익기소불능曾益其所不能이니라.)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하는 중요한 공부는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역경들을 스스로 무너지는 핑계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지녀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문왕과 무왕이 주나라를 건국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하는, 태공망 여상(일명 강태공)의 저서라 알려진 `육도삼략`에는 "근원이 깊어야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물이 풍부하게 흘러야 물고기가 와서 머문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타 존재의 삶에도 기여할 수가 있다. 이러한 근원이 깊어질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탄탄대로를 달리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와 난관들이다. 가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지 않은 나무는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신 앞에 있는 고난과 역경을 성장의 계기로 만들어 보자.

최정묵 충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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