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행운이 깃든 자리. 명당. 경기도 용인시엔 유명한 명당자리가 하나 있다고 한다. 로또명당. 1등 19번, 2등 68번 당첨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로또 판매점이 바로 그곳이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전설속의 성지나 마찬가지다.

"로또명당에 가서 나도 행운의 기운을 받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명당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언젠가 이 판매점에서 배출하게 될 20번째 1등 당첨자의 영광을 누리고 싶은 전국의 로또 전사들이 이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특히 금요일 오후만 되면, 고단한 한 주의 일을 마무리하고 내일부턴 이곳에서 구매한 로또로 기필코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꿈을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로또 판매점 인근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차량 정체가 너무 심해 주민들과 이 도로를 통과하는 차들이 심한 불편을 겪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정체를 피하려고 차선을 변경하다가 발생하는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시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비 2억 원을 들여 복권판매소 앞 도로에 163미터 길이의 감속차로를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명당이 길을 낸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60 분의 1이라고 한다. 너무 큰 숫자라 감이 잘 오질 않는데, 이 확률은 우리가 살다가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낮은 것이고 80㎏짜리 흰쌀 세 가마니와 검은 쌀 한 톨이 담긴 장독에서 눈을 감고 한 번 만에 검은 쌀을 잡아내는 확률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로또 1등에 당첨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본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한 개인이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극도로 낮지만 매주 누군가는 1등에 당첨된다. 더구나 로또 1등에 당첨되기 위해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로또 1등이 되기 위해선 명문대 졸업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키 크고 예뻐야 하는 것도 아니며 배경이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로또 1등에 당첨되지만 그 누군가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어찌 보면 상당히 공정한 게임이다. 사람들이 로또에 매혹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 이외의 요인들이 인생의 승부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현실 속에서 로또는 공정한 승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한된 출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공정한 승부의 기회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로또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게 된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로또 판매가 급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아껴도 하루하루가 위태로운데, 또 다른 누군가는 미성년자임에도 몇 십억 원 짜리 아파트를 증여받는 세상. 현실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수록 사람들은 공정한 승부의 규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로또라는 게임에서 자기 인생을 역전시킬 기회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로또를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는 것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로또 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로또 번호를 확인하기 전까지 즐길 수 있는 설렘밖에 없다.

로또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로또가 주는 희망과 설렘을 가능한 오래 연장하는 것이다. 로또 당첨자 발표는 토요일 저녁 8시에 있고 로또 구매는 일요일 오전부터 가능하다. 따라서 일요일 오전에 로또를 구매하면 다음 토요일까지 우리 모두는 로또 1등에 당첨될 수 있는 후보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사실 단돈 1000원으로 1주일간의 설렘을 구매할 수 있다면, 이는 손해 보는 거래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로또 구매를 통해 실제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확률적으로 1등 당첨기회가 제로에 가까운 로또라는 승부는 1주일마다 좌절과 무기력을 선사하는 주간행사가 될지도 모른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