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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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종종 듣는 어른들의 18번이 있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이 곡은 끝나기만을 기다리거나 실수인척 종료 버튼을 누르고 싶은 노래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스스로 찾아서 들어본다. 그뿐인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는 한다. 나이 탓은 아니라고 위로하며 상황을 탓해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상이, 평범한 것들이 그리운 때이니 말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가지 못한 친구들의 결혼식. 뉴질랜드에서 한번, 호주에서 한번, 서울에서 한번, 총 세 번을 놓쳤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갔었을 텐데 아쉽고 후회된다. 그 날을 함께 하지 못한 마음도 무겁지만 혹여 영영 친구들의 얼굴을 못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인생에 있어서 후회 되는 순간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시간과 말이다. 우리는 늘 흘러버린 시간, 뱉어버린 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마음을 쓴다. 그 이면에는 마음과 사람, 정확히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는 설치와 텍스트,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전시를 하나의 무대이자 사건의 현장으로 설정하여 서사를 펼친다. 그는 창작자이기 보다는 관객이자 관찰자로서 작품과의 교감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 발생 가능한 관계를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낸다. 대표작 `Speech Bubbles`는 헬륨가스로 채워진 말풍선인데 어떠한 텍스트나 이미지 없이 천장에 떠있는 설치 작품이다. 본래 프랑스 노동조합 시위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단절된 관계와 대화를 암시하며 그 공허함을 관람객의 언어로 채워 공간의 온도를 전환시킨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어느덧 흘러버린 세월을 체감하며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필립 파레노의 풍선들은 단절 된 관계로 인하여 하지 못한 채 담아 둔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신호이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주워 담을 수 없다지만 천 냥을 갚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후회하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자.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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