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정 대전우리병원 영양관리과 임상영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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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고혈당(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 고질병이 식사 방법 하나만 바꿔도 탁월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보통 이러한 질병이 발생하면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나?`, `어떤 식품이 어디에 좋은가?`를 생각하며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같이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에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40대에 접어들면 그동안 축적된 폭음과 폭식의 영향이 `삼고(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4명 중 1명꼴로 고혈압 환자로 나타나고 있다.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도 불리는 삼고 증상에 의한 질병들의 공통점은 `인슐린`이다. 섭취한 탄수화물은 몸 안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되는데, 인슐린은 이 포도당을 혈액에서 세포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이 당뇨병이며, 혈압과 혈액 속 중성지방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혈액 속 인슐린이 너무 많으면 혈압이 높아지고, 인슐린 수치가 계속 높아지면 간과 장에서 지방이 과잉 생산됨과 동시에 체내 지방의 합성과 분해 작용이 약해진다. 이것이 고지혈증의 원인이며, 비만 원인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거꾸로 식사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꾸로 식사법은 지금까지 습관화된 몸을 속이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식사 순서와 반대로 먹는 식사법인데, 밥→반찬→후식을 먹는 일반적인 식사 순서와 반대로 후식→반찬→밥 순으로 식사하는 것이다.

채소→단백질→탄수화물의 순서로 식사하되, 채소를 5분 이상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게 중요하다. 이는 쌀이나 밀가루 음식처럼 혈당을 갑자기 높이는 음식보다 식이섬유를 장으로 먼저 보내기 위해서다. 장까지 음식을 보내는 데는 최소한 5분이 소요되므로, 채소를 5분 이상 섭취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렇게 밥과 반찬을 따로 먹으면 자연스럽게 싱거운 음식에 길들여지고, 천천히 식사를 하게 되면서 포만감에 탄수화물 섭취가 감소하고 단백질과 식이섬유 섭취는 증가한다.

거꾸로 식사법은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방법이다. 미국 코넬대 소비자 행동학 연구팀이 124명을 대상으로 과일을 먼저 먹는 그룹과 계란·베이컨 등을 먼저 먹는 그룹으로 나눠서 식사하게 한 결과, 과일을 먼저 먹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고 지방이 많고 튀긴 음식에 대한 유혹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가지야마 내과 원장은 클리닉에서 환자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먼저 채소를 먹은 다음 단백질 반찬에 이어 밥을 조금만 먹는 식으로 식사 순서만 바꿨더니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이 크게 떨어져 치료된 환자들이 많았다고 발표했다.

혈당을 천천히 더 낮출 수 있다면, 인슐린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식사 순서만 바꾸면 음식을 같은 양 섭취해도 살이 덜 찌므로, 비만·고혈압·고지혈증이 점차 개선되고 당뇨병 혈당 관리가 훨씬 쉽다는 것을 실험 결과로 알 수 있다.

프랑스는 화려한 음식과 달콤한 디저트가 떠오를 정도로 미식가의 나라지만, 비만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그 이유로 프랑스의 코스 요리가 먼저 채소와 해산물 등 가벼운 식사로 시작해 생선과 육류의 메인 요리를 먹고, 마지막 과일이나 비스킷 등 디저트를 천천히 즐겨 거꾸로 식사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치료를 위해 고된 식이요법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먹는 즐거움이 아닌 고역이 된다. 하지만 식사 순서만 바꿔 먹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다. 질병 개선뿐만 아니라 혈당이 천천히 오르게 돼 건강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요요현상도 부작용도 걱정할 것도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거꾸로 식사법으로 오늘부터 삼고를 물리치고 건강하고 날씬한 일상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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