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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한국형 스타트업 정신을 재발견하자

2021-02-24 기사
편집 2021-02-24 07: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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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하미드 부치키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학장
외국인으로서, 학자로서 필자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가끔 놀라움과 충격을 받곤 한다. 한국인에게는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나라가 일군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은 그 어떤 위대한 경제학자나 정치학자의 논리를 가져와도 여전히 쉽게 설명할 수가 없는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필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다. 한국형 '스타트업' 정신이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 가이다. 미디어를 클릭하기만 하면 4차산업혁명이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하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이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기사도 꽤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왜 굳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리콘 밸리 역시 대단한 스토리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적어도 필자가 공부한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실리콘 밸리를 능가하는 남다른 스타트업 정신의 모범사례가 분명히 있다. 스타트업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쉽게 말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일하는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것이 아닌가? 충분한 자본금도 없이 조선소 건설과 배를 만드는 작업을 동시에 해 낸 현대그룹의 조선(造船) 사업, 대우의 세계경영,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는 훌륭한 스타트업 정신이 숨 쉬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또 어떤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아카데미 오스카상 92년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데는 CJ그룹이라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유망 기업에 투자해서 그들은 유니콘 기업으로 만들어내는 실리콘 밸리의 '페이팔 마피아'(테슬러, 유투브 등을 설립한 경영·투자자 그룹)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에서 멈춰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런 비범한 사례를 접하다 보니 여론에서 잠시 반짝할 뿐이다.

세계가 주목했던 스타트업의 전설을 제대로 소화하고 재해석해 발전시키는 데는 매우 서투른 것이 너무 안타깝다. 오히려 이러한 과거의 성공이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는 듯한 모습이다. 세계적 리더십 대가인 마샬 골드스미스의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왜 한국을 여기까지 이끈 많은 것들이 다음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가'의 모양새이다. 이제는 이러한 위대한 유산을 재발견하고 쉼 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재발명을 한 후에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될 수 있는 작업을 해야할 때이다. 적극적 도전정신, 세계시장과의 끊임없는 경쟁, 미래 시장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 잠재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 긍정의 마인드 등은 과거의 '한국형 스타트업 정신'에서 재발견하고 업그레이드 시켜, 다음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수 시켜야 하는 핵심 DNA이다.

동시에 성공을 위해 반드시 버려야만 할 낡은 유물도 몇 가지 있다. 명함(타이틀)에 집착하는 것, 방어적으로 대응만 하는 업무 태도, 대기업 만능주의, 수직적 조직문화의 산물인 '꼰대'마인드이다. 한국인들은 프로페셔널로서 내가 어떤 일을 책임지고 있고 그 분야에 전문가라는 말을 자신 있게 못하고, 부장이니 임원이니 하는 직급(계급)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거대한 공룡과 같은 조직에서 수십 년 간 보호막에 있던 구성원들의 야성이 사라지고 도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또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공감이 많이 가는 표현이다. 허나 정작 한국인들은 이를 깊이 음미하지 않는 것 같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국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라고 들었다. 축구의 본고장 유럽이 고향인 필자에게도 이 사건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이 '신화'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재발견하고 재발명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 많은 한국의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팀의 강점을 '정신력'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러나 히딩크라는 명장은 한국 축구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후, '기술'을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왼발과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멀티 포지션을 쉽게 소화해내는 선수들이 즐비하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강팀을 만나면 주눅들었던 '정신력'을 큰 약점으로 진단했다. 히딩크는 이런 강점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2002년 신화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자신들에 강점에 대한 재발견과 재발명이 그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한국형 스타트업 정신도 이제 다시 재조명되고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이 글은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의 취업센터장으로 있는 한준기 교수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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