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 상록회계법인 대전세종지점 대표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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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회계법인 고객들에게 엄청난 문의전화를 받았다. 정부가 개인 유사기업에 대해 초과유보소득 과세라는 새로운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고객뿐 아니라 기업계와 정치권에서도 들썩거리고 있었다. 당시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요약하면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가족 지분이 80% 이상인 법인이 적정한 소득금액 이상을 지출하지 않고 회사 내에 유보하게 되면 일부 소득을 배당으로 보고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법인에게 부과되는 20%의 세율과 최대 45%까지 개인사업자에게 부가하는 소득세율 차이에서 비롯된다. 높은 개인 소득세 부담을 피하려고 형식적으로 법인인 기업을 만들어 낮은 법인세 혜택을 보고자 하는 기업들을 막아보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던 초과유보소득 과세제도 도입은 건설업계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의 거센 반발로 계류됐다. 시작도 못해보고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2001년까지는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적정유보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라는 제도가 10년간 유지된 적 있었다. 1991년 법인형태에 따라 복잡하게 규정돼 있는 세율구조를 단순화하고 부담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세법 개정이 있었다. 동시에 유보소득이 많은 일부 기업에 적용되는 적정유보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라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당시 최대 50%였던 배당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배당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기획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는 IMF사태를 겪고 반대의 이유로 2001년 폐지에 이른다. 외환위기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기업의 부실한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하기 위해 배당을 통해 기업자금이 유출되는 것보다는 기업의 내부 유보를 촉진해야 했던 것이다.

기업이 보유한 초과유보소득에 대한 소득세 부담이라는 제도가 지난 40년간 정부의 필요 정책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졌으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현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제안된 이번 제도는 업계의 반대로 시작도 못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세법의 생성과 소멸의 배경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와 경제주체들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세법개정에 모든 정책이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워낙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니 다른 혁신적인 조세 제도의 제안은 거의 살펴보기 어렵고, 그 동안 비합리적이라 생각되었던 일부 조세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이 많다. 최근 대전지역 한 국회의원이 소득 최상위층을 대상으로 하는 부유세(富裕稅)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부유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에게 매기는 세금인데, 종합부동산세가 일종의 부유세다. 소득이나 부의 분배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수단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9년 상위 1%의 통합소득은 하위 50%의 통합소득과 비슷하다. 이자, 배당, 부동산소득 등 종합소득의 상위 0.1% 집중도가 2013년 8.9%에서 2019년 9.96%로 높아졌고 통합소득의 집중도도 3.8%에서 4.2%로 높아졌다. 자본소득을 포함한 소득의 집중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본의 세습이 고착화될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부유세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은 국내만이 아닌 듯 하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이런 논의가 더욱더 활발하다. 지난 대선 민주당의 대선후보 중 한명인 워런은 5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에 대해 2%, 10억 달러 이상에는 3%의 부유세를 매기자는 공약을 발표했다. 최근 미국 워싱턴주의 의원들은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에 1%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부유세를 발의했다.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해법은 우리보다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유세는 많이 버는 사람에게 과세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나 부의 해외유출 등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부유세가 촉발하는 사회적 논의는 부유세의 장단점을 논하기 전에, 자본소득 및 부의 집중도가 커지고 있는 현 세상을 다 함께 인지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임성빈 상록회계법인 대전세종지점 대표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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