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하 시인
최길하 시인
농장주인(사람)을 몰아낸 동물들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크고 높게 혁명강령을 내걸었다.

1.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것은 친구다. 3.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침대에 자서는 안 된다. 5. 술(향락)을 마시면 안 된다. 6.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평등을 강조하고 혁명할 때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 `동무`, `동지`로 호칭도 동여맸다. 보이지 않는 완장이었다. 개국공신록에 오른 형제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혁명의 주체는 돼지족, 3마리의 머리 좋은 돼지가 우두머리였다. 권력다툼이 한 차례 있고 난 뒤, 지도자 <나플레옹>과 그 밑에 주체사상 선전·선동을 담당한 <스퀼러>로 권력 정리가 됐다.

권력을 가진 지도층 돼지들이 돈맛과 권력 맛에 젖기 시작 했다. 농장 주인이 쓰던 침대를 사용하고, 술을 마시고, 사람을 초청해 계란을 파는 등 거래가 시작됐고, 두 발로 서서 댄스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윤리의 절제였던 돈과 권력은 마약으로 변했고, "평등과 공정은 우리(돼지족)을 제외한"이 됐다.

선전·선동을 담당한 머리 쓰는 돼지 <스퀼러>는 혁명강령을 교묘히 고쳤다. 조건들을 덧붙여 돼지들이 누리는 것들을 합리화해나갔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욱 좋다. 시트만 깔지 않으면 침대에 자도 된다> 불법이 탄로 나면 쫓겨난 `스노볼` 소행이라는 식으로 몰아갔으며, 통계수치를 조작해 이상향이 가까워짐을 세뇌했다. 개를 훈련해 반항하는 동물을 제압하고, 양들을 시켜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욱 좋다"고 두 발로 나온 돼지들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소설 <동물농장>이다. 요즘 드라마 <철인왕후>의 대사 한 마디가 생각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아" 나는 안다. 개혁 군주 철종도 절대권력이 길어지면 권력의 리모컨이 될 것을.

사람 탓할 것 없다. 항상 권력이 사람을 부려왔다. 그게 권력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경주 황룡사터에 다녀왔다. 거기 답이 있었다.

수백 개의 기둥을 세우고 칠보 단청을 했던 절집과 탑을 다 쓸어내고, 역사는 빈 마당만 보여주고 있었다. 9층탑이 있던 주춧돌 위에 기둥이 돼 한참을 서보았다. 빈 마당이 답을 주고 있었다. 권위도 영화도 다 벗고 주춧돌로 전개도를 보여주는 이유가 있었다. 주춧돌로 본 가람 배치가 철저하게 동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이 빈 마당의 경전 내용은 균형과 평등이었다. 균형과 평등이 평화를 이룬다는 경구였다. 균형과 평등은 좌우, 동서의 대칭이었다.

`대칭`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해 주려고 절도 탑도 다 쓸어내고 빈 마당에 포석만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경전이다. 역사는 지나간 미래다.

국민이 주권을 선거 이후에도 유지하려면 권력을 저울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절대권력을 만들어 놓으면 그 권력은 바로 부패하고, 국민은 주권을 권력에 빼앗기고 개돼지 취급을 받게 된다.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양쪽 다 무너진다. 탑은 한쪽만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이를 말해준다. 대각선의 괘가 균형을 만들고, 태극의 음양이 대칭과 균형을 이룬다. 대칭과 균형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수학도 경영도 모든 물리화학의 법칙들도 좌변과 우변의 대칭 등호(=)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몸도 모든 동식물도 좌우 대칭 균형을 추구한다. 건강, 아름다움도 등호의 언어인 대칭과 균형이다. 등호는 저울이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려면 좌우대칭을 만들어야 한다. 차라리 싸우는 것이 건강한 것이지 절대권력은 금방 썩는다. `제발 싸우지 말고`가 아니라 `제발 옳은 싸움을`을 위해 대칭과 균형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리이고 세상 운영프로그램 소프트웨어다. 최길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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